괜찮다는 위로
군학예회에 나가기 위해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선생님의 지휘하에 연습을 하고 또 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예쁜 혜지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자알 생긴 내가 대표로 뽑힌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혜지는 갑순이, 나는 갑돌이. 그때는 선생님 말씀이 곧 하늘인지라 "제가 왜 갑돌이예요? 저도 여자인데요"
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피나는 연습을 하고 군학예회에 참가하는 날, 이모가 만들어준 비단한복을 입고 이마에 머리띠까지 매고 집을 나서려는데 엄마가
"작은 할아버지가 짚신 삼아 놨다고 챙겨가라더라."
뒤통수에 대고 크게 말했다.
(네이버 검색후 가져온 사진입니다)
짚신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버선만 신자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서 짚신을 삼아 주셨다니!! 바다 일로 틀어져있던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를 위해 어렵게 부탁을 드렸나 보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대답도 못하고 얼른 할아버지댁으로 뛰어갔다.
할아버지는 혜지와 내가 신을 짚신 두 켤레를 한쪽에 얌전히 두고 새끼줄 꼬기에 집중해 계셨다.
"할부지예 ~ 짚신 가져갑니다~"
"고맙습니다"
크게 소리쳤는데도 대답이 없다, 가는 귀가 먹었다고 크게 말씀드려야 알아들으신다 했건만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잘 안 들리나 보다. 짚신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혜지와 나눠 신어보고 다시 가방에 넣고 장승포로 갔다.
군학예회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바다를 이루었다. 자칫 일행을 잃어버릴까 봐 혜지와 손 꼭 잡고 대회장소에 들어섰다.
여러 순서가 지나고 마침내 우리들이 무대에 섰다. 막상 무대에 오르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해왔다. 혜지와 눈짓으로 '잘해보자'하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시작했다. 반짝이는 초록 비단한복을 입고 하얀 버선에 짚신까지 챙겨 신고 무대를 누비니 "아이고 그 녀석 참 잘생겼다."
"갑순이 참 예쁘네." 여기저기서 칭찬의 말이 쏟아지는데 웃을 수가 없었다. 점심으로 먹은 짜장면이 너무 과했는지 배가 살살 아프고 식은땀이 났다. 결국 무대를 끝까지 못해내고 내려오고 말았다.
"짚신 잘 썼으예.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러 간 날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짚신을 삼고 계셨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시더니 "잘했나? 1등 했나?" 하신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분홍 샌들에 삐죽 나온 엄지발가락만 보고 있으니
"개안타. 다 잘할 수 있나. 지는 것도 배아야지. 공부만 단디 해라."
웃으며 말씀하신다. 배배 꼬여 짚신 모양이 돼 가는 새끼줄을 한참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개안타." 한 마디가 참 좋았다. 엄마는 그것도 다 못하고 내려왔느냐 꾸지람이었는데 할아버지의 "개안타."는 참 따스했다.
학년마다 한 반씩이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그 한 반으로 시작해서 졸업 때까지 이어지는 작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기에 늘 1등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잘했다는 칭찬보다 "잘해라"는 말만 들었던 열두 살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할아버지의 "개안타"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회사 일로 머리가 아프거나 아이들 문제로 속 끓일 때 "개안타"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주었으면 싶을 때 거울 속 열두 살 정아가 말해준다. "개안타"
짚신을 삼는 할아버지는 아셨을까? 구하기 어려운 짚신을 삼아주신 것보다 "개안타." 한 마디가 평생 고마운 위로가 될 것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