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이가 성장한 뒤에도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내 곁을 벗어나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아기부터 아이와 한 공간에 있던 것에 익숙한 부모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자신의 방으로 숨고 문을 닫고 걸어 잠그는 행위가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얘가 왜 이러지? 무슨 일이 있나?'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을 바꿔보자.
3,4살 내 아이는 그렇게 나를 쫓아다녔던 걸 기억할 것이다.
혼자 있을라치면 불안해 엄마를 찾아대고 엄마가 문을 닫거나 화장실만 가도 엄마를 불러대던 아이.
혼자 있는 게 싫어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설거지하는 엄마의 다리를 그렇게 잡고 늘어졌던 내 아이의 육아기가 생생할 만큼.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뭐 좀 할게."
라고 이야기하고는 방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이 말의 의미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달라지니 엄마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엄마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데, 온전히 10년간 아이만을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배신감, 소외감, 일상의 변화가 두려워 본래의 상황과 모습으로 돌리려고 그렇게 애를 쓴다.
아이의 3살, 엄마가 자신의 시선에 들어와야 심리적 안정을 느끼며
“내가 할래~ 내 거야!”를 외쳤던 아이를 기억하는가?
걸음마를 떼고 나의 의지로 내 몸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그 어느 날부터 아이는 어쩌면 개인의 힘을 키우는 첫 번째 연습을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가 다 해줘 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엄마가 하는 건 모조리 따라 하고 엄마의 도움 없이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을 (귤껍질을 까고, 치즈 비닐을 뜯고, 밥을 스스로 떠먹고 양말을 신는 등)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며 ‘나’라는 개인의 첫발을 떼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한 10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가 충분히 연습하고 준비가 되었다면.
자신이 그러기를 바라는 모습을 온전히 표출한다면.
자꾸만 확인하고, 자꾸만 엉덩이 붙이고 곁에 있으려 했던 지난날을 떠나보내고,
이제부터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아이를 응원하고 격려해보자.
지금이 바로 아이가 ‘개인’이 되기 위해서 도약하는 시간이고, 자신의 꿈을 좇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그런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지금 내 안의 불안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된다.
내가 할래를 외치던 그때. 아이를 바라봤던 그 따뜻한 시선으로.
네가 온전히 혼자 하려는 많은 행위들을 응원했던 그 마음으로 아이의 지금을 존중해주자.
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그 간격만큼 아이는 ‘나의 꿈을 좇는 개인’이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