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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Jun 11. 2024

인정이라는 다른 말

다정한 말 안에 놓인 마주침

 잊지 못할 일과를 보낸 후 자리에 누우면 몸은 헤아릴 수 없이 피곤이 밀려와도 마음은 이리도 흡족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무언가 해내고 이루어가는 것이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가 관심을 두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정의 순간은 시시때때로 나에게 찾아온다.


 지난 6월 1일 토요일에 지역 축제가 있었다. 축제를 앞두고 지자체로부터 부스 설치를 허가받고 나서 준비태세에 돌입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들을 토대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우리를 알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건강을 예방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전 연령층에 다양하게 접근하여 체험을 통해 알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간호 영역에서는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여 관련 질환에 대한 이해와 관리 방법을 알리기로 했다. 나이 든 분들 뿐만 아니라 요새는 이와 같은 질환으로 진단받는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으니 젊은 분에게도 예방 및 관리에 따른 인식 개선의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나와 병동 수간호사가 해당 프로그램을 맡기로 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리플릿을 준비하였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는 건강검진 파트를 맡아 검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로 하였다. 건강검진을 매년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에게 맞는 검진을 선택하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기에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논의가 되어 진행하기로 하였다.


 약제팀은 약사 체험의 일환으로 약 포장 이벤트를 벌이기로 했다. 유아와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체험 활동이다. 병원 로고가 새겨진 약 봉투에 약 주걱을 끼워 두고 색색이 초콜릿을 올려 자동 약포장기에 대고 누르면 완성이다. 꼬마 약사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약봉지에 룰루랄라 자신이 만든 약을 고이 넣고 갈 것이다.


 감염관리실에서는 손 위생 캠페인과 뷰박스 체험을 시행하고 선물로 손 세정제를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특히 병원에서 연구해서 나온 크림과 선크림, 대일밴드, 볼펜 등 부스를 방문한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기로 한다. 병원도 알리고 우리의 역량을 발휘할 일거양득의 기회라 느껴졌다.     


 아침 일찍 병원 구급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 전날 미리 실어 둔 짐들을 병원 로고가 새겨진 부스에 내려놓고 테이블에 정리하였다. 다행히 부스는 행사장 입구에 가까이 있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웠다. 2인 1조로 위치를 정하고 각자 역할을 복기한다. 행사장에서 만날 오늘은 이미 하는 일을 통해 새롭게 다져갈 일들이 되기에 기대감으로 차올라 준비하는 내내 설레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친 후 다른 부스를 둘러보았다.


 아직 오지 않은 팀도 있었지만 다양한 체험과 먹거리, 전시 및 휴게 공간, 공연을 위한 무대 시설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고 그림 그리기 대회까지 개최 예정으로 이미 행사장은 시끌벅적 잔치로 들뜬 상태다. 우리는 병원 안에서 일할 때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긴 하나 각자 부서가 있기에 오늘처럼 한 공간 안에서 협업하여 이룰 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기에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프로그램을 무사히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얻어갈 사람들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10시부터 시작이나 이미 사람들이 행사장 안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 모두 파이팅 합시다.”

 “그래요, 서로 손이 모자라면 도와주면서 잘 이끌어 보아요.”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시작을 외친다. 프로그램을 알리기 시작하자 아침 일찍 서두른 어머님, 아버님들이 부스로 방문하셨다. 혈압과 혈당 체크가 아무래도 관심도가 높아 인기를 끌었고 우리는 바빠졌다. 살아오신 내내 일생을 수없이 버티고 으깨어 다지고 인내한 흔적이 손안에 놓였다. 두꺼워진 손가락의 두께와 손톱 사이의 일생은 값진 것이었다. 의자에 앉으신 몸은 이미 한평생의 수고가 머물러 간 흔적이 되었다.


 나는 앞으로 더 살아갈 날들이 많기에 이미 살아가신 분들의 뒤를 따라가 어떤 마음으로 다지고 걸을지 생각해 본다. 오늘만큼은 이분들의 일생이 가장 훌륭한 것임을 비록 혈압과 혈당을 재어 드리는 일 하나지만 정성을 다하리라 다짐해 본다. 체크하는 내내 좋아하시는 모습만으로 이미 뿌듯한 마음이 들어 조금 더 알려드릴 것이 없는지 웃음으로 길게 살피어 간다. 부모님이 생각나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6월의 햇살은 뜨거워지기 시작하나 바람이 적당히 머물러 가고 이에 질세라 나무 아래 놓인 그늘까지 우리를 돕는다. 그늘 안에 놓인 일생이 아랫세대를 향한 버팀목이라 느껴져 눈을 들어 나무를 바라본다. 작은 것이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맞대어 어루만지며 눈으로 맞추어가는 일로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비록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다정함이 묻어나는 행동으로도 ‘아! 나는 관심을 받고 있구나.’ 느낀 순간 자신의 삶 역시 인정받는 기분이 들 것이다.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은 서로에게 통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갈 부모님에게 귀 기울이는 것을 실천해야 하기에 더 절실히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록 혈압 하나로 만난 인연들이지만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순간마다 느껴진 일들은 전혀 아깝지 않은 귀중한 경험으로 쌓였다. 끝나고 나서 멀리 떨어진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 넣으리라. 다정한 말속에 놓인 인정을 보여 주자. 비록 ‘잘 살아오셨어요’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진지하게 들어줌으로써의 인정 말이다.



하루의 의미를 뛰어 오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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