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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y 28. 2024

마주하다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볼 때는

 시골길은 내게 위안을 준다. 시골에서 느껴지는 한적한 냄새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느리게 흘러가게 한다. 벚나무 그늘은 제법 풍성해지고 그 아래 노니는 바람이 작은 풀꽃에도 수줍은 인사를 건네고 있다. 흔들리는 노란빛이 너무 고와 나도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길가에 핀 꽃들이 저마다 햇살을 부둥켜안아 날마다 자라는 지금을 보여주고 있 그것을 보는 내내 가장 보기 좋은 시절의 나를 만나게 한다.


 오후의 자유 시간을 잘 이용하기 위해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간 맞은편 카페에는 노란 풀꽃들처럼 예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카페는 저수지를 향하는 길목에 있다. 예전 보아 둔 작품 전시 플래카드가 생각이 나 해당 장소를 알아보고 찾게 된 것이다. 벚꽃이 한창 필 때는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잦으나 지금은 한산하여 유유자적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지인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조금의 여유를 안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골 안의 카페라 맞은편 통창을 통해 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치고 화단 가득 놓인 꽃 화분들과 다육 식물의 활기는 이미 커피 향처럼 불끈 솟아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오로지 내가 느낄 시간이라 여기저기 눈으로 맞춰가며 시선의 힘을 넣어 본다. 아담한 카페는 주택을 개조한 듯 지붕의 서까래를 그대로 두고 나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작가가 여기 카페에 계셨다.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쉬는 날 생각 난 작품 전시 일정과 여기를 찾은 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작가와 직접 만나게 되는 일거양득의 행운을 얻었다. 커피는 지인이 도착하면 주문하기로 하고 갤러리가 한창인 곳으로 들어가 작가의 전시 집을 들여다보았다.


 해당 그림을 그린 분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여 지금까지 미술 교육에 전념하다 자신의 그림을 내걸어 60대의 늙음을 가장 좋은 젊음으로 살고 계신 분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산책하는 일상처럼 지금 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너무 좋은 삶이라 하니 나도 60대가 되면 어떤 일에서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는 시절을 만들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마 나의 60대는 여전히 글과 필사와 책과 함께일 것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여 다시금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날마다의 붙들음의 시간만큼 익어가고 있는 나의 미래는 분명 풍성하리라 느껴다.  


 갤러리는 아담한 장소지만 그림의 시작은 고요의 시간을 크게 준다. 하나씩 찬찬히 발걸음을 옮겨 가며 보는 그림들은 일상의 기록이었다. 동네 어귀를 산책하며, 얕은 봉우리를 오르며, 자연에 호흡하며 보게 되는 계절을 한 폭의 그림마다 표현해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신 작가분이 오셔서 그림 설명을 해 주었다,

 아침 이슬을 맞은 단풍잎의 빨간빛은 요란하지 않고 흐드러져 그림자를 내리고, 바람이 이는 푸른 자연에도 사각거리며 머물러 간 시절의 풍경이 떠올랐다. 노란 개나리꽃들이 담을 따라 넘나들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깔깔거리며 피어 있고, 물길을 따라 떨어진 낙엽의 온갖 색깔들이 물 안에 고이어 이것이 물빛인지, 저것이 물빛인지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자아내고 있었다.


 작가분이 자신의 그림을 어떤 시선으로 그려내고 바라보는지 알아가게 되어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작가의 마음에 동화되어 느낌을 닮아보려 한 시간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자유로움을 주었다. 무언가 뭉클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한 감정은 스스로 찾아간 걸음에 새겨진 나름의 자유를 잘 만끽하기 위한 감동을 준다. 내가 옮겨 가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순간 나는 무엇을 채워가는지, 비록 하나의 사소한 그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시간의 매력만큼은 어쩌면 흔하지 않은 조용한 집중으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기에 그림을 보는 내내 기쁨이 인다. 그림을 마주하며 내가 그대로 비친다.




그것은 가장 달콤한 시간으로 나와 오로지 마주할 일이다.



라원애 작가님 그림 전시관 입구
바람의 길목을 잡다 한 권을 들어 읽어가다
자연 안의 일상을 그림처럼
하늘거리는 바람 소리


5월 1일 오후의 일상을 적어내다. by 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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