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철학, 네 번째

부그러운 치밀함으로 변화의 삶에 응하다

by 현정아

[나무철학, 강판권 지음, 글항아리]


제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제5장 모난 데 없는 부드러움은 치밀함에서 나온다 │ 원만의 철학 p.68~79


♧ 원만하게 산다는 것은 삶이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뜻이다. 둥글어야 어디에든 걸리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둥글게 산다는 것은 나이테가 둥글다는 데서 알 수 있다. p.69


♧ 어떤 일들은 치밀할 필요가 있고,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 그러나 치밀할수록 원만한 살을 살아갈 수 있다. p.70


♧ 치밀할수록 더디지만 실수를 적게 하고, 실수를 적게 할수록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p.70


♧ 최선을 다한다는 ‘치’는 나무의 삶 자체다. 치는 끝까지 한다는 뜻이고 어떤 일이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p.70


♧ 치밀한 공부 자세는 일종의 고학苦學, 즉 힘들게 배우는 태도다. 치밀한 공부는 절대 쉽게 이룰 수 없다. 물이 모든 웅덩이를 채우며 나아가듯, 한 단계 한 단계 밟으면서 나아가야 한다. p.75


♧ 원융은 모든 것과 통하여 아무 차별이 없고, 원만하여 서로 막히는 데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둥근 열매도 어디든 걸림 없이 굴러야 산다. p.76


어떤 삶이든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이 치밀하면 결과도 당연히 좋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 결과다. p.77


어떤 일이든 치밀하게 살려면 어떤 일이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p.79




<나의 생각 따라가기>


최선의 삶은 치밀함에서 나온다. 치밀함은 오밀조밀 잘 채워진 하루를 향해간 최선이다. 최선을 다한 삶이 치밀함이라니. 치밀함은 빈틈이 없어 바늘하나 들어갈 구멍이 없고 완벽하여 오히려 피곤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무를 통해 배운 치밀함으로 인해 다른 생각을 가진다. 나무의 나이테는 바로 둥글게 이어지고 이어진 세월의 치밀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무의 최선은 뿌리부터 줄기 끝까지 이어진 하루의 다함이다. 태양의 무게를 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받아들이는 삶이다. 최선은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과정은 의미가 있다. '치밀'이 최선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안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보는 그런 나날로 채워가 보리라.


치밀함은 나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쌓인 최선의 인내로 채워진다. 치밀함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소중히 하여가는 자세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밟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허투루 흘려보내거나 무성의한 것은 나의 것으로 오롯이 들어올 수 없다. 설사 들어오더라도 정성의 마음가짐은 한결같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제1부 순리에 맞게 변화하는


제6장 추위를 피하지 않아야 푸름을 유지한다 │ 무심의 철학 p.80~91


♧ 사람의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어렵다. 서로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p.84


♧ 나무는 자신이 문제를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이익을 다툴 일이 없다. 겨울의 소나무는 갈잎나무들과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저 혼자서 당당히 살아간다. p.85


♧ 군자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혼자라 생각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p.87


♧ 인간이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의 부모처럼 늘 한결같이 살아가는 존재를 그리워한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보다는 자신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p.90


♧ 소나무처럼 자신의 색깔을 변함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소나무의 잎이 늘 푸른 것은 처음부터 푸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p.90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노력 없이 새로울 수는 없다. 백조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물속에서 쉼 없이 발을 움직인다. p.90


♧ 하나의 자태가 밖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필요하다. 그런 고통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는 한 존재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 p.90


♧ 나는 늘 푸른 소나무의 자태를 보면서 ‘무심無心’을 생각한다. 소나무의 위대함이 무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푸른 잎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 소나무는 겨울에도 추위와 눈과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맞는다. 추위를 피하지 않아야 소나무의 푸른 잎을 유지할 수 있다. p.91





<나의 생각 따라가기>


겨울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이파리가 푸른 이유를 생각한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철학적 삶은 너무나도 보통인,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일상에 이미 친숙하게 묻어 있음을 알게 된다. 너무 익숙하고 흔하기에 소중함으로 여기기보다 당연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다.


당연함을 감사함으로 바라보니 지나던 소나무의 뾰족한 이파리에도 삶의 흔적이 녹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당연함을 다르게 바라보자. 푸름이 깊이 있는 이유는 추위와 바람과 강한 해와 비를 모두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대로를 받아들인 의연함이 나무의 뿌리를 따라 이어져 도톰하게 오른 부름켜의 이름으로 서서히 이루어 간다. 소나무 이파리가 한 줄기로 나와 두 갈래로 한 쌍을 이루듯 외로워도 외롭지 않게 쳐다본다. 소나무는 군락의 무성한 침엽수 무리로 하여금 끝끝내 뿌리부터 줄기 끝까지 살아낸 무심이라는 마음이었다.


무심은 마음을 비워내는 자세이다. 생각이 없는 삶이 아니라, 밀어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안아가는 삶이다. 소나무의 변화는 푸름의 유지에 있다. 비워내고 채우기 위한 변화는 스스로 당당히 살아가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간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은 습관 하나 이루어가는 변화야말로 내가 꾸준히 일어서고 단단해질 무심의 마음이라 여겨진다. 변화는 변화가 있기에 변하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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