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힘이 닿을 자리
4월이 되니 만개한 봄꽃과 연둣빛 싹들을 틔우는 나무로 인해 연일 행복한 시간이 흐른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민들레의 노란빛만큼이나 봄이 주는 감동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다. 지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을 나의 눈으로 담아갈 지금이 곧 새로운 날이다. 내 일상에서 겪는 새로움(경험)을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전달한다는 것은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시되며 인정되지 않는 행위일 수 있다. 누구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올리고 정량화된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지만 진정 나의 이야기는 빠져 있는 게 현실이다. 서사란 일상의 경험이 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소통되는 것임을 책을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그런 점에서 서사의 위기는 개인으로 표현되는 자유가 오히려 단절된 나의 삶으로 남아 가는 것임을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나의 이야기가 빠진 나의 삶은 결국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무엇으로 나를 이야기하고 무엇으로 나를 만들어갈 것인가! 수많은 정보 안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찾아내고 가져가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스마트한 현시대,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정보의 물결 안에 새로움을 찾느라 정작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리지 못하고 물결처럼 휘돌며 흘러만 간다.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와 맞물리며 글(이야기)이라는 근접성과 만나야 한다. 베일을 벗듯 흥미로워질 공간으로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아스라이 아우라를 만들어갈 일이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좋은 것이 있다고 기대하고 상상하게 하는 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남기고 싶은 나의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껍질만 놓인 스마트폰 안에서 가짜의 자기와 숫자에 속지 말기를.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실 안에서 현실을 잊을 물건에 종속되어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정보가 답인 양 구독과 좋아요, 쇼츠 영상에 중독이 되어 간다.
생각이 사라지고 부딪혀 얻어낼 경험이 사라지고 나의 이야기로 이룰 소통은 어려워진다. 나로 인해 연결될 사람 간의 공동체가 시각적 프레임 안에 갇혀 단절된다. 그곳이 현실이 되어 허우적거릴 뿐이다.
책에서는 나의 이야기가 곧 서사임을 밝힌다. 삶의 전부에 녹아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어져 경험으로 남겨진 이야기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이 된다고 한다. 과거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로부터 전승된 것들은 경험적 이야기를 통한 시대의 흐름을 전하는,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서사는 우리가 가진 이야기, 꾸밈없이 진솔하게 표현하고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모든 것을 일컬음을 알게 되었다. 정보는 서사가 아니다.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되지 않고 바로 사라진다. 시기와 유행에 따라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다.
이 말을 통해 나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는 마음으로 온전히 닿게 되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기쁨과 슬픔, 행복, 노여움, 안타까움과 고뇌 등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맞닿은 현실 안에서 지금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추억을 불러일으킬 이야기는 과거의 어떤 지점으로부터 시작된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는지도 모른다.
거리를 걸으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 안에 내재한 삶의 방식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진리를 얻게 한다. 사람은 자연과 혼합된 것이니 결국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자 전부다. 자연이 이끄는 방향은 혹독의 세월을 묵묵히 견딘다. 언제 어디서든 피어난다.
자연에 눈을 돌려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삶의 방식을 알아가게 된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급속의 편리함을 주지만 쉽게 싫증을 느끼고 또 다른 변화와 재미를 즉각적으로 추구한다. 기다림의 시간을 오히려 기다려주지 않는다. 길을 가다 보면 거리의 풍광에 천천히 눈을 맞추기보다 사각의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여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꽃의 향기조차 사각의 테두리 안에서 맡아가는 셈이니 마음과 몸은 연결되지 않는다. 의식은 알고리듬에 박혀 있고 더 이상 고뇌하고 생각하는 일들은 멀어진다. 관찰은 사라지고 시선은 한정적으로 된다. 풍광에 눈을 돌리면 자연은 이전부터 때때로 우주의 순리를 연결해 가고 있다. 그것을 본 순간 자연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준다. 희로애락의 모든 삶이 곧 자연적인 삶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확증 편향적 사고방식은 너무나 위험하다. 소통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현상으로만 파악하고 내 위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언은 그 사람이 듣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언이랍시고 무작정 상대에게 나의 말만 풀어놓으면 안 된다. 듣는다는 것이 곧 경청이라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깊은 의미는 제대로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청, 즉 듣는다는 것이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깊은 이야기를 스스로 표현하도록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듣고만 있는 것이 제대로의 경청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몰아의 상태로 경청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일까? 나도 그런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나의 공명을 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힘겨운 과정과 좋은 시절을 거쳐 모든 과정을 이겨낸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미래를 연결 짓는 이야기가 곧 나를 이룰 서사다. 서사는 보편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생각의 사유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가져온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가미된 실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여러 영역을 스스로 느끼고 안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또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남겨지는 일이다. 그것이 나와 타인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결합하게 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보아 가는 서사적 삶의 성찰로 공동체를 아우르는 정체성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배운다. 알고리즘에 갇혀 서로가 서로에게 단절되기보다 하나씩 풀어가는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가 많아지길 소망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자!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