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의 꿈
<환하고도 슬픈 얼굴>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소박한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206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효능의 꿈을 꾸겠다. p.206
소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소설을 떠나 문학을 어떻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각자의 가슴에서 살아간다. 문학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루만지고 돌보는 존재다. 나의 마음을 차근차근 드러내기까지 기다려 준다. 삶이라는 일생의 순간마다 문학은 한 편에 서서 때를 기다리고 용기를 주고 이야기를 건네고 위로와 행복을 준다. '
슬플 때 읽는 시는 그리움이 되고 즐거울 때 읽은 에세이는 행복이 되며 버티는 마음과 열정에 녹아든 고난은 소설을 읽을 때 솟구친다. 모든 삶이 글로 나타난다. 마음이 된다. 글은 하나의 마음이다. 내가 느끼는 생각이 글이 되고 글은 생각으로 피어난다. 내가 움직이는 곳마다 떠오르는 심상이 글이 된다. 나와 만나는 가장 근사한 방법이다.
그리고 비로소 글은 아무렇게나 쓸 게 아니라는, 글을 하나 써내는 것도
자식을 하나 낳아 놓는 것만큼 책임이 무거운 큰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p.212
문학이란 절대로 심심풀이 삼아 할 수 있는 안이한 게 아니지 않나. p.215
문학이라는 고통스럽고 고독한 작업에 모든 것을 걸어보느냐, 아니면 일상의 안일에 깊숙이 함몰할 것인가를 놓고 나는 고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작가로서의 창조적 능력에 대해서도 회의를 거듭했다. p.215
회의감이 들지라도, 안전하게 돌아 나오는 길이 있지만 평범한 속에 평범하지 않음을 담을 테다. 안전한 길보다는 글로 이루는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그것은 삶을 노래하는 방식이 되기에. 비록 쓰는 자의 깊은 고뇌는 다 알 수 없지만 내가 쓴다는 것만으로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사로잡힌 고통이 되기도 한다.
잘 풀리지 않는 글도 글이다. 내가 이루어가는 성장의 방식이다. 글로 다진 근육의 무게는 아주 미세할지라도 떨림이 있고 떨어져 나가고 휘발되어 없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씩 이어 붙어가는 성장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나도 쓰고 싶을 뿐이다.
다져진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은 과정이 있기에 존재하며 그것이 늘 성공을 부르지는 않는다. 내가 읽고 쓰는 그 시간만큼은 없어지지 않을 습작의 노련함이 된다. 잘 쓰는 글만이 좋은 글이 아니다. 내가 내세우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다.
나의 시선
나의 이야기
나의 일상
나의 고독
그것들을 씹어 삼키며 이어지는 것들로 삶은 녹록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건강하게 지탱된다.
결국 문학이란 지탱하는 힘.
누구를,
가장 가까운 나를.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음의 안정,
평화,
융통성과 유연함,
평정심
긍정의 추구
기쁨과 슬픔
부정 안의 긍정
회피와 용기
다른 눈을 뜨고
멀리 내다보는
행복함
모든 것이 책 속의 글로 가능하다. 마음이 이끌어지는 기록으로부터 나를 말미암고 안아가는 길이다.
글 쓰는 어려움에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뭔가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았다. p.216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p.216
최선을 이루어가는 곳으로 습작이 놓인다. 내 소신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주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 하나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하루를 잘 살아내는 방식이 된다. 그날의 마무리는 글이다. 그것이 나를 있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사랑을 알게 한다. 나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갖은 고충에도 쓰러지지 않을 작은 인내를 심어 준다. 글은 그래서 없어서는 안 될 빛남이다. 스스로 밝게 빛나지 않아도 은근하게 살아있는 불씨가 된다. 꺼지지 않을 마음. 그것이 겉과 속을 잘 다스리기에 진실함을 보탠다.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숨기어 덮어 두거나 구태여 변명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을 이렇게 노래할 수만 있다면.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재도 안 바꿀 것 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 221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실상뿐 아니라 자신의 실상까지 바로 보는 것만이 진정한 힘이 되리라는 새로운 희망도 생겼다. p.236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 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p.236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p.236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눈. 한 편에 치우치지 않을 눈. 어디서든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쉽지 않은 길이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람으로 나와 이룬 글 속에 살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기에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일반적인 것 안에 일반적이지 않을 시각을 창조해 내는 용기. 그 안에 녹아든 작가라는 사람의 인내와 충실. 삶을 다양하게 보아 융화하는 삶. 가장 어려운 것을 해내는 하루가 또 지나간다. 내일 다시 시작하여 최선을 이루는 삶으로 우리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