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다시 새로이 시작되는 한 해

by 현정아

이사


시│현정아

한 사람의 공간이라 해서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아들이 이사를 했다

말쑥하게 큰 아이가

내 눈에는 아직도 어려 보인다

제 쉴 공간 마련하는 일이

쉽고도 어려운 건 이제

스스로 책임을 다해

자신의 영역을 지켜가야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공간이라 해서 무시될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늘어나는 살림살이만큼이나

보듬고 이어갈 자신만의 삶은 크고도 넓겠다

제 앞에 부딪히는 모든 일을 다 해내야 한다

제 몸 하나 누일 공간이라 해서 마냥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챙겨 보내는 마음으로 조용히 응원할 뿐




나도 내 인생에 책임을 지기까지 부모의 손길은 마냥 자연스러운 당연함이었다. 품에 끼던 자식이 훌쩍 커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기까지, 나는 얼마나 내 부모님만큼 자연스러운 당연함을 주었을까 생각해 본다.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어 다듬고 완성해 가는 일만큼 쉽고도 어려운 일은 없다.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일은 겨울에 꽃씨를 품고 봄이 오기까지 혹독함을 지켜내는 일이다. 혹독함이 있어야 세상이 시린 줄 알게 되고, 그만큼 단단하게 여미어 터트려갈 준비를 하게 되니까.

아들이 이사를 했다. 한 사람 들어갈 공간이지만 이것저것 챙기는 단출한 살림살이를 무시할 것도 못 된다.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하나. 입고 먹고 씻고 자는 일들에 이렇게나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을.


숨 쉬는 것 같은 기본적인 삶에도 자본이 드는지라. 제 몸 하나 이끌어갈 일 앞에 안전함과 불안함이 모두 숨어 있겠다. 남향의 햇빛이 내리쬐는 제법 널찍한 자취방에서 아들은 한 해의 추억을 톡톡히 쌓아가리라.

먼 훗날의 아들은 지금 이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기억하게 될까. 앞으로 개척해야 할 삶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주 털끝만큼 가볍고 단조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하나 이루며 더 큰 무대로 힘차게, 용기 있게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소망이 있다. 겨울을 이긴 민들레 홀씨의 노란빛처럼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면 좋겠다. 커다란 그늘 앞에 우울하기보다 휴식을 쥐어가는 사람이면 좋겠다. 비바람 속에서 우산 하나 거침없이 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면 좋겠다.


앞으로의 나날들이 쉽고도 어렵겠지만 그것이 곧 행복임을 알아가면 좋겠다.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이 무거울지라도 깨끗하게 치워진 방처럼 아무렇지 않게 정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함을 지니면 참으로 좋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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