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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압살롬 Feb 07. 2023

L1: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어느 따스한 날에 들은 부고


사랑하는 할아버지, 저 지아예요

할아버지 계신 그곳은 어떠세요? 아직 완전한 영면에 드시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오늘 텍사스는 날이 따듯하고 바람이 많았어요.

구름은 많은데 날은 맑은 것이, 꼭 제 마음 같았죠.

어렸을 때 학원 버스를 타고 다닐 때 이따금 창 밖 풍경이 생경하게 보일 때가 있었어요.

그럼 저는 그 이상스러운 기분에 적응해 보려고 익숙한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어요.

하지만 이미 그때에도 전 할아버지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곤 했죠.

할아버지께서 아직 건강하고 맑으실 때인데도 왜 저는 항상 그 죽음이 가깝게 여겨졌는지 모르겠어요.

사랑이 너무 깊으면 이별이 너무 가까워 보이나 봐요.

제가 두려워한 이별은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루어졌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이별이 특별히 일어난 끝맺음처럼, 아름다운 성과처럼 여겨진답니다.

우리, 끝까지 사랑만 주고받았잖아요? 사랑으로 시작한 저희 만남은 이별도 사랑의 그림자로만 남았어요.

고생하셨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연옥은 어쩔 수없이 저지른 죄로 인한 고통이 있는 곳이라 해요.

그리고 그 고통의 사면은 살아있는 사람이 그 영혼을 위해 바치는 진실한 기도만으로 가벼워질 수 있다 해요.

저는 그렇기에 일평생 할아버지를 생각했듯이, 남은 삶도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로 제 효를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직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어서 마음이 놓여요.

5월이면 한국에 가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내 하루를 까먹어서 할아버지의 한 날을 더 길게 이어 붙여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건 역시 욕심이었나 봐요. 어쩌면 제 생명의 1년 치가 아니면 10년 치가 할아버지의 한날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 할아버지가 거절하였을까요. 오래 고생하지 않고 떠나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우리의 마지막을 후회하지 않아요.

20년을 준비한 할아버지의 죽음은 저에겐 차라리 홀가분한 것인가 봐요. 할아버지의 손의 촉감이, 저를 바라보시는 밝은 미소가, 그 부드러운 음성이 너무도 그립지만. 다행히 삶은 짧아도 죽음은 영원하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할아버지와 함께 할 날이 영원처럼 많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살게요. 할아버지께서 제게 바랐던 행복, 할아버지의 삶을 바쳐서 이루어주신 제 행복은 제 이름에 오롯이 새겨져 있답니다. 지혜롭고 맑게, 할아버지가 주신 이름의 운명대로 끝까지 살아내보일게요. 할아버지가 계신 그곳에서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게요. 언제나 그렇듯 자랑스러운 막내 손녀딸이 될게요.


할아버지, 그곳에서 고모를 만나셨나요?

고모께 전해주세요, 고모께서 받아야 할 사랑을 제가 받아서 너무나 감사했다고. 훔쳐간 사랑만큼 고모께도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오래지 않아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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