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년 차, 2018년 겨울. 광고라는 업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더 이상 광고 회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과,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동료가 될 수 없단 생각에 이직을 결심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25살에 취직해 31살까지 단 한 번도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음, 이력서를 써야 할까? 취업용 사진도 없는데? 그럼 포트폴리오를 더 멋지게 만들어볼까? 요즘 영어가 중요하다는데 영어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딸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노트와 펜을 들고 자취방 책상 앞에 앉아 이런저런 TO DO LIST를 하나씩 적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위해 해야 할 일 보다 이직을 한 후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오랜 시간 몸담아온 애정 어린 회사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많은 리스크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리스크와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해야만 하는, 꼭 하고 싶은, 내가 열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3가지 정도 나만의 이직 기준을 세웠다.
(1) 일상에서매일들여다보는관심사와맞닿아있는분야인가? 광고라는 카테고리에 애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직업적 방황의 큰 이유였기 때문에, 무조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영역의 업이어야 즐겁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이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관심도 없는 자동차 분야나, IT 분야, 금융 분야는 아무리 좋은 조건과 좋은 환경이더라도 일을 하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심사를 대략 좁혀보니 뷰티, 패션, 쇼핑(그 자체), 인테리어 등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나와 내 주변 환경을 더 예쁘고, 더 멋지게 가꾸어주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관심 분야로 가야겠다는 첫 번째 기준 하에 이직을 준비했다. (첫 번째 기준이 엄청 날카로운 필터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2) 배울수있는동료들이있는가?
지금 회사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바로 동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뛰어난 동료들에게 자극받으며 일했기에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똑똑한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똑똑하지만 겸손한,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동료들이 좋은 동료라고 생각한다. 입사도 안 했는데 배울 수 있는 동료들이 있는지 백 프로 알긴 어렵지만, 회사의 대표나 회사의 철학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노력했고, 면접을 볼 때 나 또한 면접관들을 인터뷰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질문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3) 성장하고있는곳인가?
성장하는 곳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회사가 한창 성장할 때 합류하여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곳에 가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실패에 관대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존이 중요하거나 후퇴하는 곳은 실패가 경험과 교훈으로 해석되지 않고 말 그대로 실패만 남는다. 그럼 성장의 기회가 줄어들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꼭 성장하는 곳, 또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곳에 합류하고 싶었다.
이러한 기준을 세우고 나는 차근차근 이직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직을 준비한다고 해서 장담컨대 회사일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입사 이래 역대급 힘들었던 G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마무리지었고, 열정적인 팀장님과 후배와 함께 어려운 제안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임했다. (물론 뒤에서 힘들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회사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덜고자 조금이라도 더 기여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나의 길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직률이 낮은 회사에서 ‘이직’은 긍정적인 면 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된다. 지금 우리 회사가 그렇다. 언젠가 내가 이직을 하게 된다면 황급하게 나가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고민을 담담히 털어놓고 나에게 있어 이직은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행복하게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