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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yne Nov 22. 2019

릴레이 글쓰기-1. 어쩌다가

어쩌다가 좋아하게 된 것들 (1) 음악, 그리고 아이돌

주변을 신경쓰지 않게 된 건 아마 어렸을 때부터 익혀온 습관 같은 것이다. 옆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신경질적인 것들에 나의 감정을 소비하고 과하게 몰입하거나 참견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작 같은 거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으레 겪었을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거 나도 겪었다.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살아남고자 악바리로 이를 갈면서 공부를 했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지금와서 보면 거긴 더욱 지옥같은 곳이었지. 남녀 구분을 겉으론 짓지 않으면서 은밀히 행하였던 차별과 폭행들은 아마 내가 고등학교 생활을 마법처럼 잊을 수 있었던 원인일 것이다. 그래, 사실 기억이 안난다. 동창들과 모여 '넌 그랬지, 쟨 뭐뭐 했었잖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랬었나? 그런 일이 있었나?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기는 커녕 어렴풋이 추측으로 맞장구를 쳤다. 내 기억력이 문제인가? 문제라면 문제라고도 할 수 있으나, 몇년간 이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다. 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우고 남겨두었다는 것. 나쁜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폭격기처럼 날아드는 폭력 상황을 겪다보면 뇌도 지쳐 기억을 저장하지 않는가보다. 나도 사람인지라 짜증나고 힘들면 터진다. 말 그대로 수습불가 폭탄처럼 빵- 하고 터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기 전에 참는 것일뿐. 나도 내가 한 성격을 하는 걸 알거든. 근데 티내면 안돼. 난 편하게 살고 싶거든, 트러블 없이 잔잔하게.


참는게 일상이라 나도 분출구 같은게 필요했다.  나도 이유불문하고 빠져든 게 있어, 그게 좀 보편적인 취미라는 거지. 음악을 들으면 '이해'를 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쟨 왜 저렇지? 수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들의 결론을 내지 못할때 답답하고 불안하다. 그치만 음악을 들으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더라. 음과 음이 서사를 만들어 내고, 드럼과 베이스 리듬이 감정을 고조시키면 완벽한 드라마 장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책보다는 음악이 더 좋다. 어릴적에는 아무리 잠이 와도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알아가곤 했다. 아 물론 책이 세상을 보는 도구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지만, 장르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자기계발서, 수필보다는 과학, 역사, 정치, 경제가 더 읽기 편하다. 전자는 불필요하게 한 개인에게 개입하는 것 같아서 낯설다. 그치만 후자는 다르다. 더 적용범위가 넓다. 그래서 내가 과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이야기가 좀 많이 샜지만 서론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거다. '이해'하는 것이 나의 삶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고,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 요즘은 특이하게 한 아이돌에 빠져있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다.(거론하는 순간 한 개인에서 빠순이 취급을 받을 게 뻔하기에-, 그리고 그러한 고정관념과 색안경을 일부 인정하기에) 원체 음악에 관심이 많아 장르적으로 들을꺼리가 많은 케이팝도 좋아한다. 그날도 어쩌다가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다가 한 아이돌의 컴백티저를 보았고, 멜론에서 음악을 찾아듣다가 빠져들었던 것 같다. 좋아하게 된 그룹의 인원이 많아 한명만 딱 좋아하기까지 거의 1년? 정도 걸렸다. 일명 '최애'라고하는 그 멤버는 어릴 때의 과오로 도덕적 실책을 대중으로부터 많이 받았다. 그래서 더욱 남에게 좋아한다라는 걸 숨겼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화려하게 생긴 이목구비라 전체 멤버 중에서도 눈에 띄었지만, 팬들 사이에서 도는 부정적인 평가와 소문에 멀리했다. 그치만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는 걸.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생각을 서툰 말솜씨로 말하는 모습과 이를 증명하듯 보여주는 행동들에 어느순간 믿음을 주어버렸고, 아직까지도 좋아하고 있다. 이젠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어이없게도-..) 언제까지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그치만 이전에 좋아했던 아이돌과는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더 진하고 애틋하다. 그래서 남겨두고 싶었다. 냉소적이고 늘상 비판적이었던 내가 무조건적으로 사랑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게 나도 너무 신기하기 때문에. 먼 훗날 이 글을 봤을 때 참으로 풋풋했구나, 과거의 나는 이랬네- 라는 정도로 나 자신이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들었던 과거 때문에 기억을 삭제해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한번으로 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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