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by 푸른향기

누구나 어둠 한 줌 씩은 부둥켜안고 사는가

어떤 날은 그것이 손바닥만 해지고

또 어떤 날은 겨울철 인적 없는

바닷가 저편에 낮게 드리운

불그스름한 구름장만 해지고

기어이 눈발이 퍼붓고 말 거야

온 마을이 눈에 잠기면

아, 고립무원

혼자 가두는 마음

혼자 저무는 생각

내가 쥐고 있는 이 어둠 한 줌

냉장고에 넣어둔 식은 밥 한 덩이처럼 차디찬

그것을 덥혀 먹고

눈, 눈, 흰 눈에 쌓여

긴 잠을 잤다





눈이 금방 쏟아질 것 같았다. 금방까지 해가 훤했는데 말이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 그 맨 밑바닥에 고여있는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괴로움이나 그리움이나, 뭐 그런 것들이 눈 내리자 다 덮여가고 밤이 찾아들었다.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그리움이나 뭐 그런 것들을 다 잊고 눈처럼 잠이 들었다. 반도의 끝, 어느 서해 마을의 외딴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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