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한 식사

by 푸른향기

아파트 뒷길 나즈막한 야산을 오른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어라, 거뭇한 청솔모가 꼬리 한껏 치켜들고
식사중이시다, 두 손을 나란히 받쳐들고
아마 도토리를 조금조금
씰룩대며 먹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는 중인데
집중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바람도 고요해지고 나뭇잎 숨소리도 낮아지는 듯
발을 씻고 들어와 앉는 마음처럼 공손한 시간이었다







먹을 것이 넘쳐난다. TV에서도 유튜브에서도 먹는 것에 대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여행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먹는 것이다. "음~ 맛있어요","달콤하면서도 그리 달지는 않고 고소한 맛이 남아요","짜지 않고 담백해요","첫 맛은 새콤하지만 갈수록 은은한 맛이 감도네요"... 맛에 대한 품평이 갈수록 섬세해지고 맛에 대한 탐닉도 깊어진다. 보는 것도 먹는 것이라서 멋지게 차려놓은 음식은 사진부터 찍는다. 그리고 먹는 순간의 행복함은 매번 반복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도를 구하는 어떤 선사가 그랬다.

"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도를 이루십니까?"

스님이 말했다.

" 너희들은 밥 먹을 때 일 할 거 생각하고, 일 할 때 먹을 거 생각하지만, 나는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일할 때는 일만 한다"


청솔모는 오로지 도토리에만 초집중하는 듯했다. 그 앞에서 나는 발소리를 끊고, 숨소리조차 낮추어야했다. 나의 미세한 흔들림이 그의 식사를 방해할까 봐. 내가 그러자 지나는 바람도 조용해지는 듯했고 공기도 낮게 가라앉는 듯했다. 청솔모는 더도 말고 도토리 한 알을 정성스럽게 두 손을 받쳐들고 먹는다. 그 소중하고 공손한 식사앞에서 나의 소란을 반성했다고나 할까.

가만히 있어도 쉴새없이 작동하는 머릿속의 소란과 거기에 따라 요동치는 마음의 온갖 무게들에 대해 생각했다. 청솔모의 그 간단한 실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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