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튤립

by 푸른향기



노란 튤립 다섯 뿌리를 심었다 빨간 튤립은 날이 좀 더 풀리면 나올 것이라 했다 언제부터 꽃 색깔은 정해졌을까 식물들은 제각기 무슨 그리움 같은 것이 다 달라서 꽃잎 색깔이 있는 걸까 빨간 튤립은 노란 튤립보다 좀 더 아팠을까 색깔이란 아린 가슴을 훑어내다 소매 끝으로 묻어나는 얼룩 같은 것,

지금 노란 튤립은 마침내 귀를 여는 듯 오므린 듯 벚나무의 쓸쓸함과 고적을 듣는 중, 많은 꽃잎을 잃어버린 나무의 기록 밑에서 차라리, 딱 한 송이로 버텨왔던 기억들이 튤립, 튤립, 솟아오른다 빨간 튤립보다는 좀 덜 아팠던 노란 튤립, 노란 색은 심장에서 좀 더 먼 색깔, 옅은 땅 속에 묻어놓았던 딱 하나의 기쁨이 날씨와 아주 알맞게 튀어나왔다








빨간색, 노란색, 자주색, 진자주색, 마침내 흰색까지. 튤립 색깔은 진하고 화려하다. 한 종류의 꽃인데 저렇게 많은 색깔이 따로 있다. 튤립은 구근류. 둥그런 하나의 알뿌리에서 딱 한 송이 꽃이 핀다. 뿌리 하나에 꽃 하나. 튤립 하나는 고적하지만 여럿이서는 화려하다. 튤립, 튤립 하고 소리내보면 소리와 입이 튤립이 될 듯 하다


'왜 나는 네가 아니고 나인가'. 어느 책 제목이 떠오른다. 왜 나는 빨간색이 아니고 노란색인가? 왜 나는 노란색이 아니고 흰색인가? 타고난 것, 원래부터 아무 이유 없이 그렇다는 것, 그러나 그 색깔이 자기 모습이라는 거, 그 색깔을 평생 가지고 간다는 거...

거기에 슬픔이 들어 있나? 바꿀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슬픔이 생겨났나? 끊임없이 나를 부정하고 존재 변화를 시도하는 우리이지만 결국은 나의 색깔에 직면한다.

색깔에 온도가 있다는 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오래 생각해 보았다. 분명 색깔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른 것은 색깔에도 온도가 있어서일 거다. 우리의 슬픔의 체감 온도가 다른 것처럼. 추위에 강한 색깔, 좀 덜 추워도 견딜 수 있는 색깔, 아예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색깔, 추워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색깔 등...


신안 임자도에 가서 튤립을 맘껏 보고 돌아왔다. 축제는 열리지 않았지만, 튤립 공원에는 튤립이 한창이었다. 딱 한 송이가 듣고 있는 고적함은 없었지만, 대신 화려한 색깔의 향연을 듣고 왔다. 그들은 슬픔이나 기다림이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튤립, 그들은 각자, 각각의 색깔로 당당했다. 오직 빨갛고 노랗고, 자줏빛이고, 그리고 또 빨갛고 노랗고 그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