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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ul 31. 2021

SKY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섬마을 학교는 쉽사리 오려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발령받은 신규교사들, 임용고시를 두세 번 본 스물여덟, 서른 쯤의 선생들이 많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이곳도 11명의 교사 중에 8명이 신규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일이 좋기도 하지만 늘 세대차이를 느끼곤 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좋은데,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좋지는 않나 보다. 좀 조심스러워하고 어려워하는 듯하다. 가까이 가고 싶은데 거리감이 항상 있다.


 어제는 마침 늙은 선생들끼리 저녁을 같이 먹었다. 교장선생님까지 합해서 모두 4명. 모두 60 안팎의 나이이다.

 "우리끼리 만나니, 참 좋소"

백배, 공감이다.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단지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으로 편했다. 네 명은 쉽게 '우리'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 눈치 안 보니 좋았고, 옛날 얘기를 해도 '~라떼는'이라는 핀잔을 안 받아도 되고, 꼰대 같다는 자의식을 품지 않아도 되었다.


  옛날에는 한 교실에 60명씩 앉아 있었다, 일요일에는 일직을 서야 했다, 일직하는 날에는 숙직실에 모여 고돌이를 쳤다, 아니 어떤 선생들은 평일에도 쳤다, 주번교사도 있었다, 주번은 아침 일찍 나가서 청소를 했다, 습자지 올려놓고 교무일지를 썼다, 시험문제는 종이로 밀었다... 숫자가 틀리면 칼로 미세하게 긁었다... 등등.  

 하나의 얘기가 나오면 서로 같은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바탕씩 웃었다. 그러고 보면 학교도 참 많이 변했다. 가장 늦게 변하는 곳이 학교라고 하지만, 그래도 십 년 전과 지금은 참 많이 다르다. 물론 이십 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 생각이 바뀌었고 선생들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도 더 이상 "우리"를 막무가내로 강조하지 않으며, '나'를 부각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 개인의 안전, 나의 진로 등등... '우리'를 강조하며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몰아가는 건 군사문화의 잔재였는지 모르겠다. 아니 좀더 확장하면 뿌리깊은 공동체를 옹호하는 문화탓일수도.


 그러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였을 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고 꼭 등장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자식 이야기! 누구보다 늦게 결혼을 한 교장선생님은 이제 아이들이 중1, 중3 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녀교육에 소신을 가지고 학원을 보내지 않았더니, 중학교 성적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사교육이 필요하냐, 공교육의 자리는 어디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식새끼 문제였다. 자식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졸지에 우리 세명은 교장선생님보다 결혼을 빨리 한 자로서 나름의 경험으로 자녀교육의 방향을 제시했다.

 -무조건 문제를 많이 풀게 하는 것이 좋더라고요

- 남들이 다 보내니, 학원은 보내는 게 어때요?

- 요즘은 혼자 해서는 안되더라고요

- 어차피 학원은 선행학습을 해요, 선행이 안되면 따라가기 힘들걸요

- 여기 샘 딸은 S대 갔어요

-!...,...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말을 기대했다, '여기 샘 아들은 Y대 갔어요'라는 말. 나의 아들이 남들이 가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줄 알고 있는 동료가 나의 말도 함께 얹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말은 오지 않았다. 왜 이 선생님은 내 칭찬을 해주지 않는 걸까. 나는 갑자기 이런 이야기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아이가 한의사가 되었다고, 그리고 둘째는 의대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참 좋으시겠다고, 칭찬을 하는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맛이 썼다.

 내 아들도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한의사나 의대 가서 좋겠다는 마음이나 다 똑같은 마음인데, 왜 한쪽은 서운하고 한쪽은 씁쓸한 건지...

 꾸역꾸역 한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얼른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둥에서 빠져나오는 애벌레'의 마음이 되어 보았다. 그 옛날 읽었던 소설, 꼭대기를 향해서 한없이 기어오르다, 다른 애벌레의 등을 밟고 또 다른 애벌레의 밑에 깔려서 올라가던 애벌레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나비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 마음이 되어 보았다. SKY가 다는 아니지 않나요? 좋은 대학 못 가면 좀 어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게 행복한 일이지요...

- 그렇지요, 그렇지요

우리는 과연 현직 교사답게 재빨리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린 교장선생님만은 마지막 결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자녀교육이 다 끝났으니까 그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라 했다.

 자식에게 얽매여서 자식에게 위안을 삼고 자식이 나의 자부심이 되고 하는 일은 참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란 걸 머릿속에서는 깨닫고 있다. 정작 자식들은 부모들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식들은 말한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그래그래 하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자식에 관한 일이다.


 어쩌면 신규 선생님들과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세대차이를 늘 느끼고 사는 것도 자식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대차이가 나이에 비례하다기보다 자식의 유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신규 선생님들은 자신의 일로 골몰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데 우리 늙은 선생들은 자신이 아닌 자식의 일에 골몰하고 미래보다 과거의 일에 집착한다. 자신과 자식의 차이는 참 크다. 자식으로서 자신을 채울 수 없는데 우리는 마치 술과 음식으로 나를 채우듯 자식의 일로 나를 채우려고 한다. 그 부질없음이여!


 이곳 섬마을 학교에도 가까운 곳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작년 겨울에는 프랑이 몇 개 걸렸다. 서울 E대 합격한 아이가 1명 있었던 거다. 마을 입구에 프랑을 내거는 거나, 나를 누가 칭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나, 한의사가 되었다고 말하며 등이 펴지는 부모의 마음이나 다 똑같은 마음인 거 같다. 바람에 펄럭이는 프랑처럼 자식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다 당연시할 일은 아니지 싶다. 그 흩날리는 프랑 밑에서, 그 흔연해하는 부모의 얼굴 밑에서 숨죽이고 있는 존재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므로.

 

좀 더 쿨하게 살자고 마음먹어본다. 잘 안될지라도 오늘만은 쿨하게! 행복은 SKY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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