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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ug 02. 2021

몸을 부러뜨려서라도 가르쳐주는 이치

- 나는 이미 완전하다

 

어... 또 화장실에 가고 싶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어섰다. 아직도 무릎이 아프구나, 젠장. 무릎을 펴서 똑바로 섰다. 그리고 한 발 두 발... 걸었다. 걸,었,다, 걸었던 것이다, 침대 위에서!  비몽사몽 잠결에 일어나서 여기가 주중에 있었던 관사인 줄 알고. 그러나 방바닥인 줄 알고 디뎠던 곳은 아득한 허공이었다.

 

(난 주말부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 밤은 학교 관사에서 자고 금요일 오후에 집에 돌아온다. 새로 옮긴 관사에는 침대가 없어서 바닥에 좀 푹신한 이불을 깔고 잔다. 침대에서 떨어진 그날은 금요일 다음날, 토요일에 일어났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무슨 낭떠러지 절벽에 내 엉덩이가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어찌 이런 일이!! 꼼짝할 수 없었다. 떨어진 자세 그대로 얼마간 있었다.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2년 전인가, 그때도 다락에서 내려오다가 계단을 잘못 디뎌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조금 있으니 괜찮아졌었다. 이것도 그때처럼 한참을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10여분이 지났을 거 같은데 괜찮아지기는 커녕 통증이 말도 못 하게 더해 갔다. 남편을 불러야 했다. 겨우 손을 뻗어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다.


 그런데 뭐라고 부르나... 여태 이렇게 소리쳐 부를 일이 없었는데... '어이~'도 아니고 '여보'도 아니고, '이봐요'도 아니고... 모두 다 내가 부르던 호칭이 아니다. 남편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코골이 때문에, 아니 잠잘 때만이라도 자유를 얻고 싶어서 나는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잔다. 아차, 어제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잔다 했지. 게다가 한 여름도 아니니 문은 꼭꼭 닫혀 있다. 온 힘을 다해서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하긴 이 꼭두새벽에 남편을 부른다고 뭐가 해결되나... 죽을힘을 다해서 변기에 앉았다가 또 죽을힘을 다해서 침대로 다시 올라갔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간신히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음성 사서함으로...

아아, 남편은 주말에는 핸드폰을 꺼놓고 잔다. 다시 한번 다가오는 암담함! 이 시간에 불러 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그러고는 다섯 시간을 버텼다. 똑바로 누워서 자세도 바꾸지 못한 상태로 꼬박 버텼다. 왼쪽 다리가 문제인 듯한데, 왼쪽 다리뿐만이 아니라 온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창이 훤해지는 듯했다. 다시 남편을 불렀다.

- 일어났어? 일어났어? 일어났어?

  다섯 시간 후에 내가 선택한 호칭이었다. 드디어 쿵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잠결에 어리둥절 뛰쳐나온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119를 불렀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안방까지 들어와서 들것에 내 몸을 옮겼다.




 엉덩이 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7주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3주 째부터 휠체어를 탈 수 있다고, 적어도 6주가 지나야 걸을 수 있다고, 앞 뒤쪽으로 금이 가서 앉아 있는 것도 안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부러져서 수술을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병원에서 하는 처치란 진통제를 주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진통제를 맞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것. 그것이 치료 방법이었다.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단다. 금 간 뼈가 다시 붙으면 되니까. 문제는 시간이었다. 꼼짝없이 3주를 침대 위에서만 보내야 한다. 그것도 오로지 누워서만!

 진통제 때문에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 3주라는 시간이 하얀 절벽처럼 다가들었다. 말하자면 절대로 투명하지 않은 유화물감의 탁하고 진득한 액체가 내 얼굴 위로 쏟아져버린 느낌이랄까. 그런 거였다. 막막히 펼쳐져 있는 그 무수한 시간을 생각하면 턱턱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막막하고 답답한 느낌도 모두 추상적인 엄살에 불과했다. 나의 실존은 시간이 주는 무력함과 답답함이 아니라 바로 다가들고 있는 똥오줌 문제에 있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두 시간마다 오줌을 누워야 하고 하루에 한 번은 일을 봐야 한다. 왜 옛날부터 똥 누는 일을 '큰 일을 본다'라고 했는지, 절절히 실감이 됐다. 안 먹으면 살 수 없는 것이고, 안 싸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나는 최대한 물은 안 먹고 밥은 최대한 적게 먹으려 애썼다.

-에고, 젊은이가 고생하요, 어쩌다가.. 쯧쯧

옆 병상 할머니들이 혀를 찬다.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정형외과 입원실에서 오십 대 나는 젊은이였다. 젊은이가 어떻게 누워서 일을 본단 말인가... 오줌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똥까지... 간병인을 자주 부르기가 미안해서, 아니 어떻게라도 조금 앉아보려는 눈물겨운 노력도 할 수가 없어서 결국 소변줄을 꼽았다. 그러나 누워서 아랫배에 힘을 줄 수 있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은 닥친 일에 대한 포기와 체념, 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품위를 지키고 어쩌고 하는 의지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내 몸이 할 수 있는 것을 수락해야 했다.

 저기 화장실에, 저기 변기에 앉혀만 주면 되겠는데... 간호사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중얼거림에 불과할 뿐, 내 몸을 들어서 옮길 수도 없었고 더더욱 변기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배 위에 식판을 올려놓고 누워서 밥을 먹고, 누워서 이를 닦고, 누워서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오늘 하루만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1주, 2주, 3주가 아니라 오늘 하루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만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그러자 답답함이 덜해지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옆 병상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오고 핸드폰도 검색하고 팔꿈치를 치켜들고 가벼운 책도 읽을 수 있었다. 월요일이 오면 또 어느새 다음 월요일이 와 있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1주를 더 누워 있어야 휠체어를 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또다시 가슴이 조여오듯이 막막해졌지만, 다시 또 오늘 하루만 생각하고 오늘 하루만 느끼고 오늘 하루만 보는 연습을 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을 가만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이면 눈을 뜨고 혈압을 재기 위해 손을 내밀고, 밥이 오면 누워서 밥을 먹고 누워서 이를 닦고 누워서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다. 그리고 침대 옆에 매달린 TV 리모컨을 돌려 TV를 본다. 내가 하는 일은 고작 하루에 서너 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내가 오늘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는 건 망상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건 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했던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되고, 바쁘게 세수할 필요도 머리를 감을 필요도, 오늘은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도, 바쁘게 운전할 필요도, 무엇보다 오늘은 뭘 먹을까 메뉴를 궁리하며 밥을 해야 하는 필요도 없어졌다.

  할 수 없는 상황 덕분에 내가 부여받은 온갖 의무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때문에'가 '덕분에'가 되었다. 의무와 함께 굳어버린 습관도 흐물흐물 녹아내려버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꼭 잠을 자야 한다는 불면의 강박관념이 저 멀리 달아난 것 같았다. '밤에 잠을 못 자면 낮에 아무 때나 자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오히려 밤 9시만 넘으면 잠들게 했다. 나는 꼭 정해진 시간에 자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하고,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하고,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한탄하고, 다음을 계획하고... 어릴 적에는 등수에 밀리지 않으려고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고, 철들어서는 사회 정의 밑에 나를 옭아맸으며, 또 결혼해서는 좋은 엄마, 괜찮은 아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나를 닦달했던가... 하아! 수도 없이 내 앞에 다가들었던 나의 할 일과 의무들이여!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니!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아도 하루는 그냥 지나가고 아무것도 힘들여하지 않아도 나의 몸은 나아지고 있다니!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속담처럼, 계획 없이 맞닥뜨린 이 사고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휴식이자 횡재인 듯싶었다. 때 되면 정확하게 밥 주고 알맞게 온도 조절해주고 혈압은 시간마다 재주고, 상태가 안 좋으면 약 처방해주고,  게다가 이틀마다 남편이 머리 감겨주러 와서 발바닥까지 씻겨주고 가지 않은가.

 

여전히 누워만 있는 건 힘이 들고 수시로 불편해지는 뱃속 때문에 불안했지만, 나는 귀한 생각을 하나 얻은 듯, 소중한 가르침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깨달음 한 조각을 얻은 듯, 그렇게 일러주고 가르쳐주고 반복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니 몸을 부러뜨려서라도 가르쳐 주는 이치를 받아들였다!



서서히 왼쪽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조금씩 앉아 있는 것이 가능해지자 드디어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3주 동안 누워만 있으면서 나의 간절한 꿈은 휠체어 타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커피 향 나는 빵집에서 차 한잔을 사들고 천천히 마셔보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살 거 같았다.

 

 휠체어 바퀴를 밀어 화장실에 가서 한 달만에 거울을 보았다. 꽤 괜찮은 '나'가 거기 있었다. 남들보다 키도 작고 남들보다 얼굴도 갸름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샤프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지?  맨날 할머니들 얼굴만 보아와서 그런가? 상대적인 느낌인가?  하긴 매일 아침 쓰레기 비워주러 오는 아줌마가 자주 했던 말이 있었긴 했다." 참 예쁘게 생겨가꼬 으째 이러고 있으까요이..." 진짜 그런가? 한참 후에 그 느낌의 실체를 해석했다. 나는 조금씩 완전해지고 있었던 거라고!

 아니다. 조금씩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완전한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늘 남과 비교하고 무엇에 쫓기고 하니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원래 아무 문제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아무 문제가 없었음을 문제가 생기고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문제가 생기니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문제없이 살아왔는지가 확연히 증명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를 만들어 나를 구석에 몰아놓고 왜 나는 구석에 있는 거냐고 한탄하고 절망했던 것이다. 그랬다.


 이제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고 있다. 인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반듯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 내 손으로 머리를 감고, 서서 세수를 하고, 앉아서 거울을 보고,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 다행과 행복을 아픈 몸이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므로 나는 완전한 존재였다.  아니 그렇게 모두를 할 수 없을 때도 나는 이미 완전한 존재였다. 한 달 만에 본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오늘만 살아야 하는 연습이 나에게 던져준 암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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