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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ug 14. 2021

깨달음은 어디 있지? 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까지

갠지스 강, 강가강이라고도 불린다. 

복잡한 바라나시의 중심도로에서 버스가 멈추어 섰다. 도로가 복잡해서 더는 들어갈 수 없으니, 각자 릭샤를 타고 강가강까지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는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릭샤를 잡기 시작했다. 말은 안 통하고, 길은 너무 복잡했다. 버스, 오토바이, 자전거, 오토릭샤, 그냥 릭샤, 소 들이 엉켜있었다. 횡단보도도 신호등도 없다. 다만 수많은 경적이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었고, 차들은 좁은 틈을 비켜나서 용케도 잘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날 때마다 울려대는 경적. 소들도 그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가던 길을 가고 어쩌다 도로변에는 굵은 소똥도 떨어져 있다. 

  강가까지는 수동 릭샤로 60루피. 나는 일행 한 명과 수동 릭샤를 겨우 잡아탔다. 릭샤를 끄는 남자는 마르고 까맣고 나이 들어 보였다. 그의 고된 수고보다 우선은 힘 안 들이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남자는 한참 가더니 그만 내리라 했다. 릭샤로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도로가 혼잡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딱 60루피를 냈더니, 더 달라는 손짓을 마구 해댄다. 1인당 60루피였나 보다. 나는 속은 것 같은 기분에 ‘NO', 'NO'를 외치며 사람들 속으로 달려갔다. 한참 나중에야 60루피는 우리 돈으로 약 천 원이라는 걸 생각해낼 수 있었다. 나는 천 원을 주지 않기 위해 뺑소니를 쳤던 것... 아, 달아나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던 까맣고 마르고 늙은 릭샤꾼...

강가에 사람들이 몰려 서 있다. 말로만 듣던 화장터. 시체를 나무판자 위에 올려놓고 천으로 덮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체는 강물에 한번 담갔다가 들어 올려서 태운다. 공중에 오르는 연기.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태 살면서 힘들 때마다 떠올리곤 하는 ‘산다는 것’의 무게. 그 무게란 것이 겨우 나무판자에 올릴 수 있을만한, 또는 물에 한번 적셨다가 태워지고 마는, 타다 남은 몸은 날아다니는 새가 살점을 물고 달아나는, 그리고 공중에 흩어지는 진한 수증기 같은 연기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강물에 적시는 이유는 그동안의 죄업을 씻기 위함이고, 죽은 지 바로 다음날 화장하는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이다. 

배에 올라타서 이제는 건너편 방향으로 화장하는 풍경을 멀리서 본다. 한쪽에 쌓아 올려진 장작더미, 이제 막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사람의 몸, 하늘로 오르는 연기. 울음도 망설임도 없고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삶이란 저렇게 순간을 태우는 것이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순간은 단순하며 가볍다. 


화장터 바로 옆은 빨래터이다. 빨래판으로 쓰이는 길쭉하고 넓적한 돌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고, 계단에는 빨래가 마르고 있다. 여기서 빨래하는 사람은 불가촉천민 같은 사회 최하층류. 그러나 빨래하는 한 여인의 표정은 비굴하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다. 지금 여기서 빨래하고 있어도 죽으면 브라만쯤으로 태어날 거라는 믿음이 있어 그러할까. 삶도 끝이라 생각하지 않고 죽음도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윤회의 한 지점에 놓여있을 뿐... 과연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이 뭐 큰일 날 일인가. 그렇다고 여기고 살아간다는데... 다만 그렇다고 여길뿐이라는데...


가장 밑바닥의 처음을 봤다. 가장 밑바닥의 처음. 모래알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하고, 공룡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물방울 같기도 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만져본 습자지 같기도 한, 가장 처음이라는 것. 그 처음의 가장 나중 또는 밑바닥이라는 것. 가장 밑바닥이라는 것과 처음이라는 것, 그리고 맨 나중이라는 것은 이리저리 뒤집어도 아프기는 똑같다. 습자지가 잉크 한 방울이나 물 한 방울에 제 몸을 온통 맡겨버리는 것처럼, 그것은 살아온 과정을 모두 흡수해버리는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그런 아프고 아픈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란다. 일상이며 또 일상이란다. 정말 엄살처럼 생은 고달프다고 무겁다고 오십견도 오고 허리가 휜다고 했는데 짐은 후적후적 빨래처럼 빨면 그만이고 그래도 남은 생은 연기로 훨훨 날아가는 것이라고 강가강이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증명이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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