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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ug 21. 2021

죽어서도 아름다움에 갇힌 여자,

-타지마할의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

네팔에서 인도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일곱여덟 시간을 졸다 깨다 반복하는 사이에 국경에 도착했다. 또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국경 통과 심사이다. 여기 사람들은 일을 천천히 한다. 컴퓨터도 느리고 전기도 충분하지 않아 곧잘 끊기곤 한다. 그러면 재빨리 수습하는 게 아니라, 저희들끼리 할 얘기 다하고 웃고 건너편 자리까지 상관하며 종이에 무엇을 쓰기도 하고 또  무슨 책자를 한없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공항에서도 그랬다. 갑자기 부스 하나가 없어지면 줄을 서던 우리는 다른 데로 이동해서 다시 줄을 서야 했다. 


 아그라 성과 타지마할로 간다. 그 더럽고 지저분한 마을이 있는 나라에 또 이렇게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영 믿어지지 않는다. 

 아그라 성. 타지마할과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 보고 있는 성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길고도 장대하다. 16세기 말 무굴제국의 악바르 황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천연 해자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이기도 한데,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탑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무굴제국은 샤자한의 치세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의 말년은 여느 권력가처럼 비극적이다. 건너편으로 멀리 자신이 지은 타지마할을 보면서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침 안갯속에서 타지마할을 보았다.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그의 아내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해 22년간 지은 무덤이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더 이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의 손목을 잘랐다고. 러시아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도 완공한 후에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와 비슷하다. 나만이 보고자 했던 권력의 극치이다.


 그러나 안갯속의 타지마할은 신비롭고 우아했다. 흰 대리석이 아무 장식 없이 정확한 비율과 균형으로 서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이었다.

  

무덤이 이토록 화려하고 우아할 수 있단 말인가. 정작 그 안의 무덤은 땅 속에 있고 무덤자리만 붉은 천으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죽음을 볼 수 없었다. 인생의 덧없음을 부정하는 건축물이라 해야 할까. 아름다움은 영원하며, 아름다움은 부를 증식하듯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걸까. 역시 아름다움은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은 어떠했을까. 행복했을까. 누군가 여자는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의존심과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길들여졌다는 건, 여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강제했다는 뜻이겠다. 부정하고 싶지만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 맞는 이야기인 듯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도 큰 일 앞에서는 남자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한 내 몸에 대한 기억도 남자의 그것보다 훨씬 어둡고 내밀하니까.

샤 쟈한은 어디를 가든지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을 데리고 다녔다고. 정복하러 가는 전쟁터에도 어김없이. 


아니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이 스스로 남편의 전쟁 길에 따라나섰던 것은 아닐까. 바누 베굼은 영리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고 했으니. 그녀는 샤 쟈한을 자문하기도 했으며 교양 있고 시를 쓰기도 했다고 했으니까. 


14살에 샤 쟈한의 눈에 띄어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던 여자. 그녀를 사랑받은 여자에서 사랑했던 여자라 바꾸어 생각하니  타지마할도 달라 보인다. 그녀 역시  죽어서도 아름다움에 갇힌 여자에서 죽어서 아름다움을 완성한 여자로. 

  

  뭄타즈 마할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  샤 자한이 황금의 보석이라 이름 앞에 붙여준 이름, 뭄타즈 마할이다. 그녀는 14명째 아이를 낳다 죽었다. 14살에 결혼해서 14명이나 되는 아이를 낳는 고통은 어떠했을까. 데칸고원으로 원정을 떠난 남편을 수행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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