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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ug 23. 2021

문제 될 거 없는 일상에서문제없이살아가기

-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돌아오는 길

 델리는 큰 도시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도 신호등은 없었다. 릭샤나 자전거가 조금 적게 다니고 자동차들이 많다. 신호등이 없어도 어떻게든 잘 다닌다. 

  우리는 화려한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묵었다. 열다섯 번의 밤을 묵은 숙박비와 델리의 하룻밤 숙박비가 같다고 했다. 과연 호텔은 큰 중정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서는 막 치러진 결혼식의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피로연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옛날 왕들과 왕비의 침소처럼 흰 휘장을 두른 임시 별채 같은 것이 두 군데 있다. 얼굴 미간 중앙에 붉고 큰 점을 붙인 여인들과 호텔 직원들이 부산하게 오간다.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흙바닥에서 염소와 함께 자는 둥게스와리의 부부가 떠올랐다. 잠에도 신분이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이곳 인도는 그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곳이다. 


델리 박물관을 거쳐 간디 공원까지 간다. 델리 박물관은 부처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8 등분한 사리 중 하나가 보존되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진액자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 내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선명하고 좋다. 저 굵은 돌조각같이 보이는 것이 부처님의 사리인가 싶다. 사리는 인간의 몸에서 누구나 나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사리를 그리 신성시할 필요는 없다고. 그러나 부처님의 사리이니 신성하게 여겨진다. 저것이 몸이었다 생각하니.   


한 사람의 죽음의 끝자리에서야 인간 삶의 허망함을 느낀다. 온갖 괴로움이란 게 다만 붙들고 있던 구름 한 조각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 色卽是空, 空卽是色!

 

간디공원을 가는 길가에도 노점상이 많다. 인도의 물가는 우리보다 싸다. 그러나 노상에서 파는 물건의 값은 정해져 있지 않다. 부르는 것이 값이다. 100루피를 불렀다가 안 산다고 돌아서면 10루피까지 떨어지고, 차에 올라타기 직전엔 등 뒤에 대고 5루피, 5루피를 외쳐대곤 했다. 나는 이것을 50루피에 샀는데 다른 사람은 10루피에 샀다고 투정하면 안 된다. 값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모든 게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그때 달라진다. 

 나는 소리 나는 밥그릇과 손수건, 작은 지갑을 샀다. 다른 사람보다 싸게 산거 같으면 기분이 좋고 좀 비싸게 산거 같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가격 대비 만족감이다.  


간디공원은 우리나라 공원만큼 잘 단장되어 있었고 엄청 넓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제단에 경배를 했다.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단체로 체험학습을 왔는지 병아리처럼 다닌다. 아이들은 당연히 구걸하지 않았고 노란 제복을 입고 뛰어다녔다.

간디가 인도 사람의 우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엄청난 규모의 공원도 그렇지만 간디를 기념하는 박물관의 규모도 상당했다. 간디의 어린 시절부터 사후까지, 사진과 세세한 설명과 시대상황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 돌아간다. 일상으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은 여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여행의 목적이 어쩌면 일상으로부터의 떠나고자 함이었다면, 여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일상의 소중함이란 게 좀 아이러니하다.


 물론 귀국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델리 공항에서 한정 없이 느린 수속을 밟았고, 경유하는 타이베이에서는 좌석이 이중으로 지정되어 1시간이 더 늦어졌다. 하필 내 자리가 중복되었음이 나중에 발견되어 나는 다른 좌석으로 옮겨야 했다. 일사불란하고 깔끔한 처리에 길들었던 습관에 비하면 상당히 불편하고 화나는 일이었다.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하면서 빠른 처리를 요구했지만 공항 측에서는 배정된 자리표를 가져와 일일이 다시 지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매우 느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리는 정비되었다. 지나 놓고 보면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 좀 늦어지긴 했어도 돌아올 자리에 왔으니까. 


 지나 놓고 보면 큰일이 아닌 것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을 것처럼 아웅거리고 조급해한다. 조급증. 내가 발견한 나의 모습 중 하나이다. 뭐 좀 늦더라도 어떻게 되겠어? 잠을 잘 못 자도 당장 죽기야 하겠어?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사실을 제대로 보는 것, 이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라 했다.


 난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났다. 지금 나를 얽매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마침내 ‘아, 행복해’ 하는 순간을 맛보기 위해. 고된 여행이 알려준 것은 나는 지금 여행 중이라는 것, 그토록 꿈꾸는 자유와 행복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 보는 데 있다는 것. 그러니 난 지금 현재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바로 그 지점이 행복과 자유라는 것. 이것만 해결되면 행복할 거 같은 것은 착각이라는 것.


 아, 이 깨달음이 지속되기를...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지 말고 끊임없이 지금에 깨어 있기를. 우리나라 땅을 밟는다. 공기조차 편안하다. 내 말이 통하는 곳,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문제 될 것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 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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