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향기 Jun 02. 2022

우울한 당신께 보내는 편지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5시가 되니 창밖이 환해져 있었고, 5시 반이 되니 거의 밝아져 있더군요. 아니 5시가 되기 전부터 동은 이미 터오고 있었던 듯합니다. 내가 잠들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는 태양을 부지런히 돌아서 햇빛을 시작해주었습니다. 지구가 23도로 기울어져 계절마다 다른 햇빛을 우리가 볼 수 있다지요. 그러건 말건 계절마다 해가 뜨는 시각이 달라지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건 말건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도 확실하겠지요.

 확실한 건 무엇이고 또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 내 마음속에는 당신의 우울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할까요. 그러면 그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우울한 당신, 오늘도 또 어떻게 하루를 시작했나요.  어제는 너무도 환한 햇빛을 보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요. 아침이면 깨어나지 않은 몸을 붙들고 고개를 가슴 밑까지 내리고 하염없이 시간을 견디는 모습이 안타까웠지요. 빨리 밖으로 나가자 했어요. 그러면 조금 나아질까 해서. 


 우리는 모두 무엇에 갇혀 사는 듯해요. 지금 당신은 우울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요. 스스로 만든 감옥이라 하지요. 그 감옥의 문이 스르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공기가 축축해지고 조금씩 습기가 많아지다 장마가 오고 그러면 당신의 우울의 문은 조금씩 녹기 시작하지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몇 해 전부터 그러던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우울은 봄만 되면 손님처럼 오는 것이었으니까요. 초록이 나무 등걸을 뚫고 나오기 시작할 때, 꽃잎이 사방에서 터져서 지상이 화려해질 때부터 당신에겐 어둑한 기운의 싹이 올라오나 봐요. 지금은 녹음이 무성할 때, 그러니 당신의 우울도 한참이라는 걸 이해하겠습니다. 


 유달산 둘레길을 걸었지요. 목포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서 배낭에 싸 들고 온 사과와 바나나를 먹었지요. 우리 주위에는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아이들이 조잘대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크던지 옆에 서 있던 예덕나무도 귀를 막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 젊은이들의 활기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어제만 해도 같은 사무실의 젊은 또래들이 공휴일을 맞아 전주로 1박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오후에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햇빛이 없어도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그들의 패기만만함이 부러웠던 거지요. 그들 안에 가득 있을 햇빛이 부러웠다는 거지요. 당신은 내 말에 시끄럽기만 하다고 했어요. 모든 일이 심드렁하고 귀찮으니 우울이겠지요. 당신의 안에는 아직 햇빛이 깃들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당신은 어딘가에 눕고만 싶다고 했지요. 밖으로 같이 나왔지만, 햇빛을 많이 보고는 있지만, 당신은 여전히 어두웠어요.

<삼학도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집에 돌아오니 어슴푸레한 어둠이 거실에 당도해 있었지요. 우리 집은 동향이라, 점심때만 지나면 어둑어둑해 지지요. 그러다 해가 넘어가는 때가 되면 잠시 잠깐 환해진답니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집안을 살피지요. 그 햇빛도 좋아요. 저물녘의 햇빛은 조금 순해져 있기 마련이어서, 벽을 타고 흐르는 빛이 은은하고 바닥에 깔리는 빛도 연해져 있거든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쏘는 빛이 아니지만 숨은 듯 잠깐 내비치는 빛도 좋아요.


 여름철이라 해는 길어져서 요즘에는 여덟 시가 넘어야 주위가 캄캄해져요. 어둠이 짙게 내려앉기 전에 우리는 각자의 짐을 싸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어둠이 편안하게 방안에 깃들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하지요. 밖의 어둠이 온전하게 내 어둠이 되어 내가 그 어둠 속에 온전히 몸을 풀어놓을 수 있기를 바라지요. 이제는 숙면이 중요해졌어요. 주위도 더 캄캄하게 만들고 그 어둠 속에 의식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지요.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휴식이 오니까요. 


 우울이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명랑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요. 우울이 슬픔으로 넘어갈 때, 명랑이 기쁨 속에 자리를 내줄 때 편안함이 오기도 하니까요. 


  편지를 쓰는 동안 햇빛은 책상 앞까지 왔네요. 당신의 햇빛은 지금 어디만큼 왔을까요. 빨리 당신에게 햇빛이 당도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야말로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요. 기울어진 당신의 축이 햇빛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요. 


 당신의 우울 곁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수국에 물은 주었나요? 가뭄이 심해 수국 잎이 시들시들하잖아요. 일상이 곧 당신에게 햇빛을 가져다줄 거예요. 그러니 너무 몸부림치지 말고 천천히 시든 잎들을 돌보아요. 당신의 우울 덕분에 나의 몸의 축이 조금 당신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만 총총. 


매거진의 이전글 문제 될 거 없는 일상에서문제없이살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