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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Nov 17. 2021

나이 든 사람이 쉽게 삐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국어는 여섯 번 째예요

" 수업 잘했어?"

" 네!"

" 다음 수업이 무슨 시간이야?"

" 영어요"

" 영어는 어때? 재미있어?"

" 네!, 체육이 제일 재미있고 그다음이 영어예요"

"그으래? 국어는?"

"음~ 국어는 한 여섯 번째예요"


( 어라? 내 순위가 그렇게 밀렸단 말이야? 두 번 째도 아니고 세 번 째도 아니고 여섯 번 째라고??)


 왜 이리 의기소침해졌는가? 자꾸 옛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업에 몰입했고, 아이들이 나의 말에 빨려 들어오던 때. 내가 열변을 토하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주던 때.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기도 했던 때.  말의 흐름이 깊은 생각을 들춰내고 그 생각이 진심에 다가갔던  그런 때가 있었다.  

 

 복도를 지나면서 또는 한 학년이 끝나갈 즈음엔 흔히 이런 말을 듣곤 했다.

-  선생님 수업 짱이예요!

-  고등학교 가서도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어요

-  선생님 때문에 국어가 재미있어졌어요

그랬단 말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작년엔 전교생 11명인 학교에서 근무했다. 전교생이 11명이니, 한 학년은 2명, 4명, 5명이었다. 두 명을 앉혀놓고 훌륭한 수업을 하기란 힘들었다. 거의 과외 수준이거나, 기껏해야 짝꿍 돌보기만이 가능했다. 수업을 잘하는 선생님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는 선생님이 최고였다. 수업에 기가 막힌 감동이 일어날리는 없고 얼마만큼 개인 학습을 잘했는가가 문제였다. 그때부터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을까.

 너무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일 년만에 빠져나와 새로 정착한 학교도 역시 섬마을 학교이다. 그러나 학생 수는 훨씬 많아서 전교생 60명 수준이다. 두세 명 앉혀 놓고 앉아서 수업하다가 한 교실에 20명이 앉아 있는 걸 처음 보았을 때 숨이 턱 막혔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았다. 1년밖에 안되었어도 나는 어느새 적은 수에 적응이 되어버려서 20명도 많다고 여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20명밖에 안되어도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서 교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한다. 내 목소리는 점점 힘이 없어지고 크기도 작을 뿐만 아니라 조금 세게 말하고 나면 머리가 울리고 두통이 생기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학교에서 마이크를 쓰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물론 내가 단연코 나이가 제일 많은 선생이다. 아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딱 한 명 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로 퇴직교원이시다. 그분은 교과서 하나만 딸랑 들고 수업에 들어가시는데 항상 여유롭고 당당해 보인다.

 내가 수업을 위해서 들고 가는 건 마이크와 스피커, 교무수첩, 교과서, 노트 없다고 하는 아이들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다니는 A4 백지,  좌석표, 학습지, 스티커, 잘했다고 할 때 주는 사탕, 색연필 등등. 노란 바구니에 그것들을 가득 넣고 다닌다. 그래서 노란 바구니를  들고 교무실을 나설 때면 어디 목욕탕에 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가르칠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아이들이 잠을 안 자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연구한다. 30년 가까이 가르쳤어도 수업 준비는 늘 새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실제 수업은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 수업은 그날그날 아이들의 기분에 따라 또 내용에 따라 달라지기 일쑤이다.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냥 아이들의 호흡에 맞추어서 아이들의 웅성임 속에 들어가야 수업이 잘 될 때도 있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먹는 아이는 반에서 고작 두 세명 정도! 대부분 아이들은 그냥 따라 한다. 아니면 다른 일을 한다. 아니면 졸거나 교과서 여백에 그림을 그린다. 엎드려 잠을 자버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야 한다. 아이들은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별로 없다. 재미있게 한 시간을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재미를 팍팍 넣어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조금 이끌어낼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준비한 내용을 펼치기란 쉽지만, 열의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꽉 막힌 벽장을 뚫는 송곳 같은 유머와 쫀득쫀득한 재간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해 보기 위해서 서랍을 뒤져서 보드게임 세트를 찾았다. 게임 규칙을 익히고 이것을 어떤 내용에 접목시킬지 궁리한다. 재미있게 하려면 내가 우선 재미있어야 하는데 나라는 사람은 통 재미라곤 없는 사람이니 게임의 힘을 빌려본다. 아이들은 " 에이, 시시해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게임을 시도하고 있으니 그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이제 나의 열변이나 열강이 통하지 않은 아이들이니, 주요 무기를 바꾸어 들어야 한다. 그 주요 무기의 핵심은 '재미'이다.  


 복도를 지나는데 옆 교실에서 벌써 수업을 시작했는지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다.

" 안녕하세요오?"

참, 소리가 크구나 싶었는데 살짝 들여다보니 음악시간인가 보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선생님 시간이다.  

' 뭐야, 아이들이 저렇게 인사를 잘해주고 있었단 말이야? 젊고 이쁘니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가보지, ?'

쳇!! 나한테는 저렇게 크게 인사해주지도 않으면서! 순간 또 마음이 썰렁해진다. 마음이 참 얄팍해졌음을 또 느낀다. 젊고 이쁜 선생을 시기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제 젊지도 이쁘지도 않으면서 게다가 시기하는 마음이 들끓고 있으니 겉과 속이 다 젬병이다. 이를 어찌할꼬... 늙어갈수록 늘어나는 것이 아량이 아니고 시기심과 질투뿐이다. 나이 든 사람이 더 쉽게 삐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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