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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May 24. 2022

명예퇴직을 언제 해야 할까

  친구들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명퇴(명예퇴직) 이야기이다. 언제 할 거냐, 하면 뭐 하면서 지낼 거냐, 퇴직한 누구누구는 뭐 하면서 지낸다더라, 어차피 명퇴금 받으면 월급 받는 거나 비슷하니까 퇴직하는 게 더 낫다 등등...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참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했다. 일자리가 없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언제 그만둘 것인지를 놓고 열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마치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심보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내면에는 나는 아직 명퇴할 때가 아니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나이가 명퇴할 때가 아니라는 것보다 그럴 마음이 아직 안 들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직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아이들과 부대낄 자신이 있었고, 온갖 멀티 기계가 들어오고 온라인 시대가 되어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 단단한 무기가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느낌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런데 작년부터 명퇴 이야기가 나의 문제로 다가들고 있는 것이다. 왜?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한다. 온라인 수업도 했다.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하지? 하면서 겁을 냈지만, 담당 샘이 설치를 해주고 나는 접속만 하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필기할 것이 있을 때는 펜을 사용해야 하는데 펜 놀림이 자유롭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아이들이 지루하게 같은 화면만 보게 할 수는 없으므로 다양한 기법을 이용해서 주의를 끌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했다.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수준에서 그쳤다. 요즈음 젊은 샘들은 자신이 직접 영상을 제작하거나 콘텐츠를 개발해서 수업한다고도 들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해봐야지~"하는 생각보다는 "나는 안될 거야"라는 열패감이 먼저 올라온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스스로 그러는 것이다. 


 코로나가 다시 한번 재유행이 될 때였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화면을 켜고 "애들아, 안녕?" 하고 한참을 말했는데, "샘~ 목소리가 안 들려요~~" 하는 것이다. 왜? 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이어폰을 안 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다니... 어제는 멀쩡하게 해 놓고 하루 만에 버벅거리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자괴감이 올라왔다.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하나. 이건 기계 혐오증만이 아니라 정신이 자꾸 깜박대는 증상까지 같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실수를 하지 않고 살려고 해도 자꾸 실수를 하게 된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실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나희덕의 수필을 가르치면서 공감한 바가 컸다. 그래도 실수의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갈수록 많아진다.


 나는 원래 젊었을 때나 어렸을 때나 어리버리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나의 실수가 사람들 입방아에 올려지기도 하곤 그때마다 좌중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실수가 유머로 이어졌고 나도 그것이 나의 개성으로 자리 잡는 듯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실수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자꾸만 실수가 자신 없음으로 이어지고, 능력 없음과 나이 듦의 증명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카페나 식당을 갈 때도 그랬다. 간 곳마다 큐알 체크를 하라고 하는 통에 힘들었다. 큐알 코드가 잘 안 뜨는 때도 있고 따로 앱을 설치해 놓았어도 접속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직원이 도와주곤 했는데,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또 스스로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곤 했다. 

 도처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간 곳마다 사람 대신 기계가 앉아있다. 영화관에 가도 매표해주는 사람은 없고 자동발매기가 있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기계로 다가가서 터치를 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는 하이패스로 진입하지 않았다고 "하이패스는 빠르고 편리합니다"라는 멘트를 맨날 들어야 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집에 있는 TV 화면이 너무 어둡게 나와서 AS를 신청했다. 자동 응답기의 해당 번호로 진입해야 하는 과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도 금세 진화해서 기가 지니가 전화를 받는다. 기가 지니의 음성이나 발음이 조금 어색해서 버벅대고 있었더니, 지니가 그런다. "고객님, 저는 지니입니다. 마음 놓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코로나가 온라인 세상을 앞당기고, 메타버스가 등장하고 있다. 요즈음 아이들은 가상현실에서 게임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학교도 가고 놀기도 한단다. 어차피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었다고 어느 학자가 말하기는 했었다. 책을 읽는 것, 화폐로 물건을 주고받는 것, 드라마를 보는 것, 모두 어찌 보면 가상세계와 다름없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새로운 가상세계만이 가상세계인 듯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실물이고, 비트코인만이 가상화폐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마치 은행 건물이 있어야 진짜 은행 같아서 돈을 맡길 수 있고, 은행 건물이 없는 카카오 뱅크는 공중에 떠 있는 유령 같아서 돈을 맡기기가 불안한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마치 내가 옛날 할머니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할머니들이 은행보다는 자기 집 방바닥을 더 믿어서 그 장판 밑에 돈을 숨기고 살았다고 했다. 내가 마치 그와 같은 꼴이 되어가고 있는가? 


  세상은 이미 낡은 나를 밀어낼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들이 발 빠르게 변화해가는 이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거라는 예감이 들곤 했는데,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의 나의 문제로 다가들고 있다. 


언제 명퇴를 해야 할까?, 직장에서의 명퇴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명예로운 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버벅거리고 살 바에야 자연인처럼 산에 들어가서 사는 방법도 있겠다. 그래서 내 진즉 시골의 전원주택을 장만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도회지적인 삶이 싫어서. 한가하게 텃밭이나 가꾸면서 땅에서 자란 곡식들과 얘기나 나누면서 지내고 싶었다는 말이다. 내 재주와 소질을 진즉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상에 알맞게 진화하지 못하고, 자꾸 뒤처지는 마음이 시골을 선택했을까? 자연이 정답이라고 시골의 삶이 보다 인간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언제까지 여기에 있게 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한 해를 산다는 기분으로 한다. 올 한 해 별일 없으면 내년도 하는 거고, 못하겠으면 그만두는 거다. 마치 오늘 하루를 잘 살면 내일 하루를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짧게 보기로 한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지만 '명퇴' 운운하는 입장에서는 짧게 보는 것이 해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잘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마침 오늘은 날씨도 쾌청하다. 어느새 여름이 와버려서 30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공기는 맑고 바람이 살랑, 창문 안으로 들어온다."쌤, 사랑해요~" 갑자기 연서가 달려와서 나를 뒤에서 껴안는다. 그래, 아직까지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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