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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Feb 27. 2022

불면증과 만보 걷기

-루틴1

요즈음 루틴이라는, 내게는 생소한 말을 많이 접한다. 지식in을 검색해봐도 확실한 개념이 잡히지가 않아 아들에게 물었다. 

" 아들아, 루틴이 뭐야?"

" 루틴? 글쎄~ 습관?"

" 습관? 그러면 그냥 습관이라고 하면 되지 왜 또 어려운 말을 만들어내서 쓰고 있는 거지? 나이 먹은 사람 헷갈리게?"

" 으음... 습관이지만 그냥 습관은 아니고... 음 그러니까 좋은 습관?"

" 아하~~ 좋은 습관! 좋은 습관을 날마다 들이는거?"

"음 그렇지이"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생수 한 컵씩을 꼭 마신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 그러면 너가 아침마다 물 먼저 먹는 것도 루틴이네?"

" 음 그렇다고 봐야지"


나의 루틴은 하루 만보 걷기이다. 작년 가을부터 해온 일이다. 물론 그전에도 걷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 보를 정해놓고 걷지는 않았다. 몇 해전에 불면증을 앓던 친구가 하루 만 보를 걷는다고 해서, 그걸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해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나도 갱년기와 함께 찾아온 불면증 증상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터라, 만보에 대한 부담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지 않은 잠을 붙들고 하룻밤을 꼴딱 새는 것보다 걷는 것이 훨씬 낫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걸어서 해결되는 것이라면 백 번이라도 한다. 불면증을 앓아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하룻밤이라도 잠이 안 오는 고통을 겪어버리면 다음 날 부터는 불안감이라는 정체없는 불덩이가 생겨버린다. 그리고 반복되는 관성 때문에 그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사실 잠 보다는 불안감이 더 문제다. 불안감은 곧 강박관념으로 이어진다. 오늘 못 자면 어떡하지? 내일을  어떻게 보내지? 불안감이 시작되면 잠은 더 이상 오지 않고 두통만 시작될 뿐이다. '오늘 못 자면 어때... 내일 자면 되지 뭐, 오늘은 좀 덜 피곤한가보네, 잠이 안 오니 다른 일을 할까... ' 뭐 이런 상태로 되돌리기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면증은 병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그 생각하는 방식, 마음 돌리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한 번은 '불면증, 단박에 고칠 수 있다' 뭐 이런 비슷한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사서 읽고는 그 책의 저자와 거금을 들이고 전화상담하는 것도 신청해보았다. 그때는 거금보다는 단 하루의 잠이 절박했다. 한 번 수렁에 빠져버리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가닥 동앗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상담사가 진행하는 날마다의 체크가 또 하나의 강박관념을 만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돈을 날려버리고 말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강박관념이라는 것도 모두 내 성질과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점점 깨닫는다. 뭐든지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고 중간에는 도저히 그만두지 못한다. 그리고 한 번 생긴 의심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이런 성질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밀어부칠 때는 좋지만, 거꾸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 문제를 놓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하고 있게 만드는 것이다. 

 어릴 때 영어 참고서의 '성문기본영어'와 수학 참고서' 수학 정석'을 한 챕터 이상 넘겨보지를 못했다. 

그 때, '성문기본영어'와 '수학의 정석'은 그야말로 중고등학생의 필수이었고 말 그대로 꼭 완파해야 하는 정석이었다. 나는 그 두 책의 첫 단원에서 늘 헤매고 있었다. 어느 한 부분이 막히면 도저히 건너뛸 수가 없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하고 또 다시 시작하곤 했기 때문이다. 

 살림을 하면서도 설겆이는 바로 바로 해야 했고, 잠 자기 전에는 거실이 모두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늘어놓은 장남감이나 남편이 걸쳐놓은 옷, 뭐 그런 것이 있으면 안되었다. 거실 물건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정리가 다 되었을 때 하루가 마감되었고 그래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물론 그때도 이불 위에서 코끼리 숫자를 백 마리, 이백 마리 세고서야 잠이 드는 때가 많았지만. 

 

 그러고보면 불면증이란 것도 이런 나의 습성 탓에 오래 전부터 그 징후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갑자기 병처럼 다가온 것이 아니라 모두 나의 생각의 습관, 생활 습관 때문에 자초한 일이고 그 결과물이란 것을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날마다 걷고 또 걷는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걷다보면 생각하는 습관도 방식도 달라짐을 느낀다. 걷고 있으면, 눈 앞에 다가드는 풍경은 수시로 변한다. 풍경은 순간에 머무는 법이 없다. 내가 어느 한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다가도 지나는 새 울음 한 마디가, 지나는 바람 한자락이, 허공위에 뜬 구름 한 조각이, 지나가는 사람의 동작 하나가 생각을 깨어나게 한다. 생각을 '지금'에 있도록 일깨워 준다. '지금'은 불안하지 않고 늘 변화하며 평화롭다. 그걸 느끼는 순간 마음이 조용해지고 편안해진다. 


  핸드폰에 만보기 앱을 깔아놓았다. 걸은 횟수가 일만 숫자를 찍을때 비로소 나의 하루가 완성되는 느낌이 든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바람 부는 날에는 모자를 쓰고,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남편은 이런 나를 놓고 집착이라고 하고 운동 중독이라고도 한다.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중독일지라도 잠만 잘 잘 수 있다면 그런 중독은 괜찮다 싶다. 사실 만보를 걷고 또는 그 이상을 걸은 날은 일찍 잠이 든다. 몸이 피곤하니까.  


 만보를 걸으려면 약 한 시간 반이 걸린다. 핸드폰을 들고 집을 나설 때는 어떻게 한 시간 반을 걸을까 막막해지는 때가 많다. 특히 비가 오거나 날씨가 사나울 때는 더욱 그렇다. 핸드폰에 미리 걸어놓은 숫자가 꽤 많이 찍혀 있으면 비상금을 두둑이 갖고 있는 사람처럼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한다. 한 시간 쯤 걸으면 육천보, 또 십 정도 걸으면 칠천 보 , 팔천 보가 되고 조금만 더 하면 만 보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서 느껴지는 것이 또 있더라는 것이다. 뭐랄까, 일종의 자유로움? 놓여남? 그런 느낌이 어느 순간이면 드는 것이다. 어떤 운동 선수가 운동에 몰입할 때 내 몸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그것과 흡사한 느낌이랄까? 그럴 때, 하늘 위에 달이 떠 있거나 저녁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그 달과 해가 바로 내 앞에 가까이 있어, 그 달과 해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온다. 그 소중한 무엇, 내가 평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잡혀오는 느낌이 있더라는 것이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놓여나는 느낌 속에 그 오랜 강박관념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깨달음도 덩달아 찾아오기도 한다.

 

불면 때문에 시작한 걷기가 나를 구원해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면 결국은 불면이 나를 구원해주는 셈이다. 고통이 즉 해결이다.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해결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 몸이 그것을 중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겠는가.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곧 몸으로 나타난다. 


 오늘은 마을 논둑길을 걷는다. 처음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을때는 혼자 마을길을 걷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환한 대낮에도 아무도 없는 길이 무서웠고,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는 기운이 있으면 누가 잡아갈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을에 산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웬만한 어둠이 아니고서는 혼자 걸어도 무섭지 않다. 

 마을 입구를 막 벗어나니, 소가 운다. 소를 키우는 축사에서 꿀꿀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역겹고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금 안좋은 냄새 정도에 그친다. 소는 왜그리 슬피 우는 걸까... 나무들의 가지들이 하늘 아래 선명하다. 벌써 나무들에게는 봄이 시작되는지,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부분 색깔이 달라졌다. 길에서 아이를 낳아서 이름이 '질례'라고 짐작되는 문패있는 집을 지나고, 마을 당산 나무 쉼터 옆, 줄지어 나란히 내놓은 의자를 지나고, 엊그제까지 철망 안에서 죽어라고 짖어대던 개가 사라진 자리를 지나고,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은 폐가 같은 집을 지난다. 벌써 저녁은 입구까지 내려와 있고 산에서는 묶어놓은 염소가 승냥이처럼 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소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농부의 마음이 되어 돌아온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묵화/ 김종삼>


마을 입구에서 울어쌓던 소도, 허리 구부리고 오후 내내 시금치를 캐던 할머니도 저녁 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 적막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오늘 하루의 루티은 완성되었고 나는 노곤하게 무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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