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향기 Feb 14. 2022

 아파트 청약 소감문

"내일 4일은 1순위 청약일입니다. 5일은 2순위입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시어 꼭 당첨되시길 바랍니다. 24평, 33평, 45평, 그리고 펜트 하우스도 있어요.- 빛고을 부동산 올림" 


 도시에 집을 구하느라 몇 번 부동산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중에 한 부동산에서 온 문자이다. 청약 한 번 해볼까? 그렇지 않아도 청약통장이 몇 년째 못 쓰이고 처박혀 있는데? 그런데 덜컥 당첨돼버리면 어떡하지? 거기로 이사할 생각도 없는데... 지금 아파트도 처분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게다가 우리는 1가구 2 주택이라 쉽게 사고팔지도 못하는데( 캄캄한 시골에 조그마한 전원주택 하나, 도시에 아파트 하나가 있으니 1가구 2 주택 보유자이다)... 그런데 이럴 때는 무조건 해보라고 하지 않았나?


 한 친구는 부동산을 하는데 웬만한 월급쟁이 수입 뺨치게 잘 벌어서 자식들한테도 집을 각각 사주고 본인의 집도 두어 채 가지고 있는 사업자이다. 그 친구와 만나면 시종일관 집 이야기, 투자 이야기의 화제를 피할 수가 없고, 그런 데에 능숙하지 못한 우리는 문외한처럼 세상살이에 꽉 막힌 사람이 되곤 한다. 


 친구에게 연락 한 번 해볼까 하다가 하루가 지났다. 친구는 무조건 해보라고 하겠지만 물어보는 것조차 왠지 꺼려졌다. 없어도 되는 욕심을 또 부리고 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 일에 끼어드는 게 왠지 나의 일 같지가 않아서였다. 그래도 먹잇감을 앞에 놓아두고 있는 짐승처럼 자꾸 마음이 갔다. 


 1순위 청약일인 어제, 그러니까 4일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 시각은 오후 5시 10분이었다. 어떻겠냐고 한 번 해봐도 되겠냐고... 친구는 얼른 하라고 성화였다. 그런데  청약은 5시 30분까지이니 얼른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내일까지 갈 것도 없이 1순위에서 마감이 되어버릴 거라고. 

 만약 덜컥 당첨이 돼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 아파트는 투기과열지구가 아니어서 전매제한이 없다고 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한 번 해볼까?  전매도 안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계약을 포기하면 된단다. 아, 그렇구나!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P만 받고 내빼는 식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돈을 버나 보다. 


 시계를 보니 5시 15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퇴근 후 걷기 운동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컴퓨터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10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나는 왔던 길을 부지런히 되짚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노트북에 부팅을 하니, 5시 27분이었다. 3분 만에 청약을 할 수 있을까? 금융인증서도 받아야 한다는데... 인증서는 어디 있더라? 그렇지, 가방에 들어있지, 후다닥 USB를 꺼내어 접속하니, 인증서 만료기한이 지났다. 브라우저에서 가져오기, 모바일로 가져오기 등등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할 수 없다. 내일 출근해서 해봐야지, 1순위에서 마감이 될 거라고 했지만 청약 자체가 안 될리는 없을 것 같았다. 


  이튿날 오전에 다시 청약 홈에 들어가서 접속을 했다. 이리저리 하다 보니 옛날처럼 인증서 파일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에 어떤 세상인데 USB를 들고 다니면서 인증을 받을까 싶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그냥 핸드폰으로 인증받고 비밀번호를 치면 들어가게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인증서를 갱신하지 않고도 접속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컴퓨터 앞에서 헤매다가 로그인이 되었는데, 짜잔~~, 청약 마감이다. 오늘이 2순위 청약일인데, 이미 1순위 청약일에 마감이 다 되었나 보다. 부동산 친구의 말이 맞았다. 한 발 늦었다. 고민하고 망설이다 시간을 다 놓쳤다. 


 놓친 먹잇감이 더 탐스러워 보인다고 내내 아쉬운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당첨이 되어서 P를 받고 전매를 하게 되면 서울 아이들에게 얼마쯤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덜컥 덜컥 오후에 밀물 들어오듯이 마음을 점령했다. 

(최근에는 집 값이 너무 올라서 집 없는 사람들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집 없는 사람들을 절망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국이라 할까... 젊은이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고 한다는데, 대출은 뭐 누구나 아무렇게나 해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결혼을 앞두고 있는 우리 집 아들만 해도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

당첨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당첨된다는 가정을 해놓고 아쉬움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댔다. 오전 내내.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 진짜 발 빠르다 하는 것이다. 나는 늘 한 발 뒤에 서 있고. 


 살만한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내서 부동산 투자에 얼씬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을 잘 살아가는 모습인가?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인가? 소신, 신념, 가치관, 이런 것들이 돈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모습이었다. 그깟 몇 백만 원에 말이다. 

 

 그냥 여러 가지 변명을 앞세우기보다 반성하기로 한다. 그냥 한 순간 들었던 욕심이었다고. 기름에 튀겨진 튀김을 앞에 놓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러 들어온다는 돈 앞에서 가치관을 내팽개쳤다는 걸, 반성한다. 

 날마다 뉴스에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투기열풍을 가라앉힐 묘수를 대권 후보들이 내놓고 있다. 투기 열풍이야 서울의 이야기이겠지만, 이런 산골에서 아파트 하나 청약해본다고 투기열풍에 가세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 같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더디고 문외한인 사람까지도 부동산 투자에 정신을 놓는 걸 보면,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부동산 열풍에 휘말려 들었지 않나 싶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뭘 하나. 나 같은 사람들이 그 틈새 아래 우굴거릴 텐데.

  

  이 소박한 20평 집에 만족하기로 한다. 평수가 넓으면 뭐하나? 하루 세 끼 먹고사는 건 똑같은데. 입이 하나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선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옹그리고 있다. 이제는 인증을 받을 수 있고 이제는 청약하는 방법도 알았으니,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해보리라 하는 마음 말이다.  대체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젓갈에서 울음까지,김장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