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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Dec 30. 2021

젓갈에서 울음까지,김장에 대하여

-먹어봐, 맛있어? (아무  말이 없다) 맛없어? 

-아니, 맛있어,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그런데 표정을 보니 썩 맛있는 것 같지 않군. 뭐가 문제지? 과연 맛이 안 난다. 좀 더 짜야 하나? 젓갈을 좀 더 넣어본다.

-어때, 좀 괜찮아?

- 응 아까보다 더 낫네.


  올해로 네 번째 김장이다. 얻어만 먹다가 내 손으로 김장을 하게 된 건. 김장이라고 하지만 절임 배추를 주문해다 양념만 만들어 비비는 거니까 반만 김장이라고 해야 맞다. 반김장이지만 그것도 힘들다. 미리 양념을 때에 맞춰 주문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재료를 얼마큼 넣어야 하는가가 어렵다. 고춧가루는 얼마큼, 마늘과 생강은 얼마큼, 젓갈은 얼마큼... 핸드폰으로 김장 레시피를 보고 분량을 가늠하지만, 막상 하게 되면 그 분량을 정확히 하기가 어렵다. 옛날 엄마들이 '적당히', 한다는 그 적당히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맛있게 하려고, 사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게 하려고 온갖 재료들을 다 장만한다. 젓갈도 새우젓, 갈치 창젓, 황석어젓. 사과, 배, 홍시와 찹쌀풀, 다시마, 멸치까지. 그리고 은근한 맛을 위한 생새우와 청각을 준비한다. 여러 가지를 많이 넣는다고 맛있어지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넣는다. 


  그런데 네 번째 김장을 하면서 비로소 조금 깨닫는다. 제일 중요한 건 젓갈이라는 걸. 사과, 배, 다시마, 청각, 이런 것들보다 관건은 싱싱한 젓갈과 그 적당한 분량이라는 걸.  절임배추의 절여진 정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춰 젓갈을 얼마만큼 넣느냐가 김치의 맛을 정한다. 소금기를 품고 있는 배추에 걸맞게 좀 더 다른 맛의 소금기를 가하는 것. 

구수한 멸치 젓갈이든지, 깔끔한 새우 젓갈이든지, 하여튼 멸치나 새우가 소금에 절여져서 뱉어내는 짧쪼름하고도 은근하고도 입안에서 오래가는 맛이 중요하다는 거다.  새우 젓갈은 맑고 깨끗한 맛, 멸치 젓갈은 조금 구수한 맛, 그것을 받쳐주고 있는 소금 맛.  김장의 고수는 그 맛을 적절히 섞을 줄 아는 사람일 거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어느 한 맛이 다른 맛을 지배하지 않게 서로 스며들어가는, 그런 맛을 낼 줄 아는 사람... 

 

옛날 엄마가 봄이면 생멸치를 박스채 사 오던 것을 기억한다. 골목을 돌아다니는 멸치 장수를 불러서 사 오곤 했는데 그걸 왜 김장철보다 한참이나 이른 시기에 했는지 새삼 이해가 간다. 거기에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이번에 담은 김치는 단맛이 강하다. 나중에 젓갈을 조금 더 넣기는 했어도 젓갈의 은은한 맛보다는 단맛이 먼저 혀끝에 와닿는다. 맛있게 하려는 욕심만 커서 김장을 달게 만든 셈이다. 내 하루가 지나치게 달기만을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버리려야 버려지지 않는 짠기를 쉽게 버리려는 마음이다.

  

  버릴 수 없는 짠기! 그것은 슬픔이나 울음이라 할만 한가? 멸치나 새우가 소금기를 받아들여서 제 몸이 짜지는 것처럼 내 인생이란 것도 울음에 절여지고 마는 것임을 안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난 이미 소금 안에 들어있는 멸치나 새우와 같은 것을... 인생이 어차피 소금 항아리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인가? 


  지나치게 짠 것을 싫어하는 내 입맛은 울음을 거부하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해 본다. 난 이미 소금항아리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꼴인데 짠기를 거부하다니! 다만 내 몸이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절여지기를 바랄 뿐. 절여진 맛이  조금 다른 맛으로 주변을 물들게 한다면 그것은 덤으로 얻은 최대의 행운일 거다. 

 

 내년에는 차라리 다 담아진 김치를 모두 사버릴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내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다시 김장을 시도할 것 같지만, 올해보다 더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젓갈의 선명한 역할을 알았으니 이번보다는 좀 더 나아질 거란 기대를 해본다. 

 어릴 적 엄마가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김장을 할 때, 옆에 쪼그려 앉아 먹었던 김치 한가닥의 맛을 기억한다. 그 맛을 흉내낼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자꾸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게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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