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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pr 28. 2022

봄 한철 우울증

봄에 하는 일이란

누구의 쓰라린 상처를 엿듣는, 염탐하는
이제는 누워버린 목련 꽃잎 누추한 역사를 되묻는
무덤가를 뒤덮고 있는 꽃잔디의 징그러움에서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의 안부를 캐보는 것
임자대교 엎드려 있는 작은 섬들을 가리키며
거북섬 건너오는 바람이 차갑지는 않다고
괜스레 말해보는
환한 우울을 앓는 남자 곁에서
라일락 향기 무심히 건네보는
그러다 괜스레 꽃잎 지듯
마음도 접혀오는 중간쯤
아무 말 없이 사과꽃 연분홍 입술 
도톰하게 솟아나는 일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엘리엇의 시를 찾아본다. 황무지라는 시집에 '죽은 자의 매장'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에서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했다.  싹을 틔워내는 포근포근한 땅을 엘리엇은 죽은 땅이라 보았다. 그러나 엘리엇이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까지 했는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똑같이 봄을 맞아도 어떤 사람은 봄을 생명으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본다.  나는 봄을 좋아하는 편이다. 꽃이 좋고 꽃이 지고 나면 싹이 돋는 것도 좋다. 지금처럼 온 사방 천지가 연푸른 색으로 뒤덮이는 때는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행복을 쉽게 용인할 수 있다면 초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물론 금방 1초도 지나지 않아 다른 일을 떠올리고 다시 행복하지 않은 고민으로 빠져들곤 하지만.

 남편은 해마다 봄만 되면 우울증을 앓는다. 병원에 몇 번 다녀보더니, 계절 우울증이라 한다. 완벽주의자나 성격이 꼼꼼한 사람, 예술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쉽게 걸린다고도 했다. 남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 때문에 우울증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런 기질 때문에 시를 쓰는 걸까. 앞 뒤를 명확히 가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해마다 봄만 되면 시름시름 입맛도 없어하고 기운 없어하고 의욕도 잃어버리는 듯하다. 올해는 그  증세가 유독 심하다. 꽃놀이를 가자고 해도 시큰둥하다. 꽃이 예쁘다는 말도 쉽게 건네지 못한다. 꽃이 예쁘다고 말하면 아무 대꾸도 안 한다. 자기 마음은 이렇게 어두운데 옆에서 꽃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식물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봄에 우울을 앓는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어두운데 밖이 너무 환해서 더 우울하다고. 바깥의 세상이 모두 똑같은 느낌으로 갈리야 없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느낌은 있다는 고집을 부려보아도 그 말이 들어갈 틈은 아예 없어 보인다. 

 우울한 사람 옆에 있다 보면 나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게다가 요즘은 자꾸 설치는 잠 때문에 불안하고 불편하다. 며칠 전에는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중간에 잠이 깨면 시계를 보지 말라했다. 불면증 클리닉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시계를 보게 되면 잠을 잤나 안 잤나를 체크하게 되고 잠을 그때까지 못 잤다는 생각 때문에 더 잠들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밤에 시계를 보지 않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날은 아침인 거 같은 착각이 일어서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3시 반이었고 아침이 아직 멀았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랬다는 기억이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을 깨면 쉽게 다시 잠이 들곤 했는데 그 망할 놈의 한 번의 일 때문에 며칠이 불편해지고 있다. 

 생각이 문제이다. 그놈의 생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듯하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어서 여기까지 진화해온 것이지만 생각하는 특성 때문에 온갖 고민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어쩔 때는 이 생각의 머리를 콱 들어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좀 심했나? 생각은 스스로를 옥죄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벽을 친다.

 지금 남편도 우울이라는 벽에 갇혀 있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환한 햇빛 속으로 쉽게 나서지 못한다. 그것이 우울이란 걸 잘 몰랐을 때는 내게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많이도 싸웠다. 왜 얼굴을 그렇게 찌푸리고 있느냐. 왜 말을 좋게 안 하냐, 왜 웃지를 않냐, 왜 친절하지 않냐, 등등으로. 싸움의 발단은 늘 얼굴 표정과 말투로 발생되곤 했다. 그것이 해마다 찾아오는 환절기 증상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한다.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이 더 힘들겠지 싶어서. 

 그 감옥을 얼른 부수고 나오라고,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감옥을 만들어 놓고 갇혀 있다고 타박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내 마음의 감옥 속에서 사는 건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어제의 감옥에서 오지도 않은 미래의 감옥의 현장이다. 

 목련이 진 자리에 제법 널찍한 잎이 흔들리고 있다. 수선화, 튤립, 철쭉이 차례로 지니 장미 꽃송이가 올라오고 있다. 햇빛은 점점 환하고 따스해진다. 밭에는 이제 갓 심은 모종이 낮게 자라고 있다. 봄은 이렇게 찬연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냥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굳이 복잡한 생각을 비우려거나, 생각을 원망하며 호모 사피엔스 기원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다. 그냥 햇빛 속으로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한 발만. 꽃잎도 꽃송이를 뚫고 조금만 내밀고 있으면 햇빛이 더 깊숙이 다가와 꽃이 된다. 꽃잎이 핀다.  

 우리도 살짝 방향만 틀면 무궁무진한 우주가 내 눈앞에 있을 것이다. 어제와 미래의 감옥보다는 생생한 지금이 놀랍게 있을 것이다. 괜히 남편의 우울을 핑계 삼아 나의 우울을 가늠하고 있었다. 남 탓하는 것은 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곁눈을 파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는 생생한 봄이 와 있다. 내가 보고만 있으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보지 않기 때문에 생각에만 휩쓸려 가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멈추고 보자. 지금 이대로를. 지금 이대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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