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오디오
남자와 살게 되면서 들여놓은
십 년도 넘은 오디오 있지요
넓적한 스피커를 두 개 달고 있는 덩치 큰 그것이
삼 년 전부터는 소리가 잠시 끊기는 병
생겼어요 한참을 가만있다
다시 목청을 틔우곤 하는데
가만 보니 비 오는 날이나 비 오기 전날
이를테면 습기가 낮게 깔리는 날
막히는 것 같거든요
몸속 어딘가는 아픈데
도대체 고칠 수 없어
이제 버리리라 마음먹으면
그 마음 알고 한동안 잘 나오네요
아픔을 건드리는 게 습기일까요
희미한 햇빛이 벽 앞에서 주저앉는
습한 날이면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목이 눅눅해지는 것처럼
저 기계도 공중의 습기 몸에 와닿으면
소리를 못 내고 울음을 삼키는 걸까요
돌아갈 수 없는
고칠 수 없는
이제 오디오를 만든 공장도 없어졌는데
버리기는 아까워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오, 당당한 오,디,오,
― 한 번 사버린 물건을 물리기는 힘들다. 요즘엔 반품도 쉽사리 되는 세상이지만, 한번 포장을 뜯어버리면 힘들다고 들었다. 처음 무엇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지만, 한번 시작한 일을 되돌리기는 더욱 힘들다. 되돌리기 힘든 물건도 고치고 또 고쳐서 쓰다 보면 정이 생긴다. 그럴수록 물건은 더욱 당당해진다. 집도 그렇고, 개나 고양이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심지어 사람도 그렇다.
요즘엔 오래된 시골집을 고쳐서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옛집을 고치고 사는 마음을 모두 추측해보기는 어렵지만, 추레하고 헐겁고 푸석한 시간의, 그 유구함과 교감하는 즐거움과 애틋함은 아닐까. 번들거리고 화학약품 냄새나는 가구에서 느낄 수 없는, 닳아진 모서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산에 오르다 보면 여러 사람이 잡고 올라간 나뭇가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급하게 경사가 꺾이는 곳이랄지 한 번에 오르기 힘든 곳에 서 있는 굵은 나뭇가지에는 매끄럽게 윤기가 흐르는 부분이 있다. 사람이 잡고 오르내린 흔적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자리는 그만큼 사람을 많이 끌어올렸다는 걸 말해준다. 사람을 한 발아래로 안착시키기도 했음이다.
오래된 물건이나 오래된 집이나 오래 키워온 생물이나 모두 자신의 한 부분을 남에게 닳아지도록 내주고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그 덕에 소소한 일상을 버텨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