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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Aug 22. 2024

이건 생존이야?

끄적거림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어휘력은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이다.


친구와의 대화 중 요즘 대중매체에 많이 나오는 문해력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어휘력 부족으로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하지만 주변 젊은 학부모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천 시 방과 후 수업은~.’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문의 문자가 엄청나게 왔다고 한다.

우천 시는 어디에 있는 동네냐며 묻는 내용이란다.

일부 젊은 세대들이 금일은 금요일,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다.

설마 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자수업이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한자보다 영어를 우선으로 배웠다.

나이가 많은 윗세대분들은 자신들의 똑똑함을 드러내기 위해

또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한자어를 섞어서 말했다. 관공서의 문서들은 여전히 그렇다.

젊은 세대들은 어른들과 비슷한 이유로 영어를 한글과 같이 사용한다. 한자에서 영어로 바뀐 것이다.


“이제 가정통신문에 한자어 대신 영어로 써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만약 한자어 대신 영어로 단어를 바꿔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건 문해력의 문제일까 어휘력 문제일까.

우리는 어설프게 한자나 영어 단어를 한글과 같이 마구 사용하며

문해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천 시’ 대신 ‘비가 오면’으로 문장을 써 주면 이해하기 참 쉬울 텐데 말이다.


우리는 글과 말에서 생각보다 한자어나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나올 때가 많다. 그걸 마치 똑똑하다 느끼며 자랑스럽게 쓴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한자어가 나오면 내 멋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모르는 말이라며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반대로 알지 못하는 영어가 나오면 똑똑하지 못한 내가 잘못인 것 마냥

잊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하나둘씩 한글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자와 영어 단어는 알아도 한글로 뭐라 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아 당황한다.

한글을 한글답게 고스란히 사용하는 방식을 잊어간다. 나에게 한글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를 뽐내느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말들이 조금씩 달라지니 대화를 하고 있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게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만 말할 뿐이다. 대화가 막히는 기분이다.

같은 언어로 사는 이곳에서조차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니.

나는 요즘 젊은 세대가 쓰는 줄임말도 알지 못하는데.

우린 서로 잘 지낼 수 있을까. 왠지 같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는 것 같다.


문해력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말 그대로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글과 친해지기 위해선 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듯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잘 이해해 줘야 한다.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고 그 뜻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다.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존이다.



친구와의 대화 중에 내가 놀란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들이 핸드폰과 컴퓨터가 익숙해서 그 둘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놀이는 물론이고 무언가를 쓰는데 핸드폰이 자연스러워 연필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컴퓨터로 보는 것이 익숙해서 종이가 낯설다고 한다.

익숙한 물건이나 환경이 아니면 대신할 수 있는 일들을 모른다고 한다.

나는 문득 어른들 중에서도 종이와 연필이 어색해져 핸드폰에 메모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요즘 아이들은 마트에서 음식재료들이 나고 자란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만큼 씁쓸했다.


나는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바다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으면 나에겐 종이와 연필이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내가 직접 찾아보면 된다. 내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방법들을 모르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다니.

세상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시대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갑자기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생존이다.

아이들에게 생존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가 웃는다.

잘 적응해서 살 텐데 과거를 살아온 걱정 많은 어른의 생각인 걸까?

그래도 알려주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는 것을.



나에겐 또 하나의 생존이 있다.

가능한 쉽게 글을 써야겠다. 모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건 독자와 나의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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