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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Aug 15. 2024

안녕! 오이 김밥

나를 담은 음식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구독해서 보는 요리 채널에 내가 10년 전 해 먹었던 오이 김밥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김밥과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들어가는 내용물이며 만드는 방식이 거의 비슷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이 김밥은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본 김밥이었다.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였다. 잘하지 못하는 요리를 이것저것 도전해 보던 시기였다.

김밥을 만들어 먹고 싶은데 재료가 너무 많이 필요하고 여름이라 날씨는 더웠다. 

고민 끝에 제철 재료인 오이와 게맛살을 이용해 김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밥에 소금과 참기름으로 약간의 간을 하고, 게맛살은 잘게 찢었다. 

오이는 가로로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 후 물기를 짰다.

김을 깔고 위에 밥을 올려 넓게 폈다. 절인 오이와 게맛살을 가득 넣고 사이사이 마요네즈를 조금씩 뿌렸다. 김밥을 돌돌 말아 꾹꾹 눌러주었다. 끝이었다. 간단했다.

나름 만족하며 남편에게 시식을 부탁했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맛있다고 해주었다. 

내가 먹어봐도 괜찮았다. 뿌듯했다. 어려운 김밥을 성공했으니 이제 요리를 잘할 것만 같았다.


한 달 후 친구들이 놀러 왔다. 나는 저번에 그 자신감으로 오이 김밥을 다시 만들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과 집에 온 손님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느냐고 고생했어. 배고프지? 일단 이것부터 먹어 봐. 한번 만들어봤어. 오이 김밥.”

“이게 뭐야? 오이랑 게맛살만 넣으면 김밥이 아니지. 먹을 만은 한데 재료를 너무 아낀 거 아니냐?”

“야, 먹지 마. 왜 먹고 있냐?”


‘이것들이 열심히 만들어줬더니 뭐라고? 혹시 맛이 별로인가? 저번에 그 맛이 아닌가?’


남자 동기들의 짓궂은 장난이라지만 나의 정성과 내가 만든 오이 김밥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의욕과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정말 맛이 별로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오이 김밥은 나의 실패작이 되어갔다. 그 후로 나는 오이 김밥을 해 먹지 않았다.

오이 김밥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10년 후 오이 김밥을 다시 마주하게 된 나는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때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져 간 오이 김밥이 마치 성공해서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아쉬웠다.

 내가 그때 쉽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올여름에도 나는 오이 김밥을 신나게 만들어 먹었을 텐데.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남들이 한 말이 뭐라고 나는 내 취향을 쉽게 실패라 단정 지었을까. 

친구들이 유튜브나 인터넷에 나오는 오이 김밥을 보면 내가 만들어준 그때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왠지 억울하다. 나만 기억할 것 같아서.


아삭한 오이의 식감, 시원한 향과 즙. 고소한 마요네즈와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게맛살. 

이 재료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오이 김밥을 나는 좋아했다. 거창하지만 내 요리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남들의 한마디에 쉽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것을 지금의 오이 김밥이 말해주고 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기 취향대로, 자기 뜻대로 살아야 한다.

괜히 주변 말에 휘둘려 취향을 포기한 나는 자신감도 잃고 오이 김밥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때 ‘오이 김밥이 어때서’라며 계속 만들어 먹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오이 김밥의 달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덕후가 성공하는 세상이다. 

내 뜻대로 무엇이든 좋아하는 한 가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빛을 보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미안하다. 나의 나약함에 꺾인 오이 김밥이여.


“날도 더운데 오랜만에 오이 김밥이나 다시 해 먹을까? 괜찮겠어?”

“좋아.” 남편이 흔쾌히 대답해 준다.

“어때? 난 맛있는데.”

“나도 맛있어. 역시 여름에는 오이가 맛있지.”


여전히 오이 김밥은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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