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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Sep 05. 2024

안녕! 팥빙수

나를 담은 음식

여름이 끝났다. 

아직 더위는 남아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말해주고 있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고. 

입맛도 바뀌고 있다고. 더위를 차갑게 식혀줄 음식 대신 조금씩 따뜻한 음식이 좋아진다. 

하지만 아직 이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서일까. 남은 더위가 더 덥게 느껴져서일까. 

여전히 차가운 여름 음식이 먹고 싶다. 달달하고 시원한 빙수가 먹고 싶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자연스럽게 빙수, 팥빙수는 나의 여름에 함께 있었다.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잘게 갈린 얼음과 단팥. 우유와 달달함을 더해줄 연유. 

그 위에 뿌려지는 미숫가루와 떡, 젤리, 프루트칵테일. 마지막으로 딸기와 초코맛 시럽. 

하얀 얼음에 화려하게 알록달록 꾸밀수록 맛있어지는 팥빙수였다.


내가 학창 시절 팥빙수 제조기가 유행했었다. 

밖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었던 팥빙수를 마음껏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집들이 제조기와 재료들을 잔뜩 구입하였다. 덕분에 여름 내내 팥빙수를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무척 신이 났었다. 

집집마다 시럽이나 미숫가루같이 올라가는 재료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꼭 필요한 단팥, 우유와 연유만 있어도 괜찮았다. 차가운 얼음이 살짝 녹아 단팥과 우유, 연유와 어우러지는 시원하고 달달한 맛으로 충분히 좋았다. 물론 나는 젤리와 프루트칵테일을 제일 좋아했다. 이 재료들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아서 넣을 수 있을 때 듬뿍 넣어야 했다. 선착순이었다. 어느 날은 팥빙수에서 이 재료들만 얼른 골라 먹고 추가로 더 넣은 적도 있었다. 비밀이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막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서울 강남역에 약속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 갔는데 그곳에 유명한 팥빙수가 있다고 했다. 우유 빙수였다. 일단 다른 팥빙수처럼 섞지 말고 먼저 한 숟가락 떠먹어 보라는 말에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놀랐다. 입안에서 고소한 얼음이 사르르 녹아 바로 사라져 버렸다. 올라가 있는 재료는 팥과 인절미뿐이었는데 대패로 썬 것 같은 얇은 얼음이 달콤하면서도 고소했다. 나와 새로운 팥빙수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팥빙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얼음은 점점 눈송이로 변해갔고 올라가는 재료들은 다양해졌다. 더욱 화려해졌다. 예전에 팥빙수는 화려하지만 투박한 느낌이었다면 요즘 빙수는 세련되게 잘 꾸민 느낌이랄까. 맛과 모습 둘 다 말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어떤 맛이든 크게 상관없다. 

빙수는 취향이다.


팥빙수는 자연스레 빙수 그 자체를 말하는 이름 같았는데, 지금은 빙수의 맏이가 된 것 같다. 

빙수가 팥빙수 하나였을 때는 빙수를 먹는 게 팥빙수를 먹는 거였는데 종류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면서 ‘팥빙수’라고 정확히 말해야 한다. 여전히 빙수를 대표하는 이름이지만 예전에 비해 줄어든 관심에 조금은 서운해할까. 대신 이제는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으니 괜찮으려나.

여름 음식이지만 사계절 음식도 돼버린 빙수가 나는 아쉽지 않다. 겨울 빙수도 맛있다. 

여름에는 시원한 눈을 먹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주고 추운 겨울날에는 달달한 눈을 먹는 것 같은 행복을 선물한다. 빙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어떤 종류를 먹어도 맛있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종류가 다를 뿐이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처음 사이에 놓인 오늘. 빙수가 생각난다. 

이 더위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선선한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마음껏 누려야겠다. 

덥고 힘들었던 일들을 잊게 해 줄 여름 빙수의 시원함과 달달함을 말이다.


오늘은 어떤 빙수를 먹어볼까. 돼지바 빙수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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