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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Nov 28. 2024

안녕! 어묵과 오뎅

나를 담은 음식

그 계절이 돌아왔다. 쌀쌀해진 바람과 차가운 공기.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어지는 추운 계절이 왔다.

언제 먹어도 늘 맛있지만, 늦가을부터 겨우내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이 있다. 바로 어묵이자 오뎅이다.

지금은 어묵으로 불리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오뎅으로 불렸던 음식이다. 그 익숙함 때문일까?

어묵탕, 어묵볶음으로 부르는 것은 크게 어색함이 없는데 왠지 아직도 어묵꼬치는 오뎅으로 불러야 더 맛있는 느낌이다.

일본의 오뎅과 어묵이 다른 의미라고 해도 추억이 있는 음식의 이름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추억과 함께하는 의미로 어묵꼬치만은 오뎅으로 불러볼까 한다.

나는 언제 어묵을 처음 먹었고 그때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 어묵은 늘 자연스레 있는 것이었다.

떡볶이 옆에는 오뎅이 있어야 했고, 국물은 떡볶이나 튀김, 순대 그리고 호떡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마셨다.

떡볶이 한 입에 국물 한 모금, 다시 떡볶이. 호떡 한 입에 국물 한 모금, 다시 호떡처럼 말이다.

집에서는 어묵볶음이 자주 식탁에 올라왔다. 인기 있는 반찬이었다. 짭조름한 양념이 스며든 어묵의 맛은 또 하나의 밥도둑이었다.

고기와 생선을 잘 먹지 않던 동생도 어묵만큼은 좋아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맛도 좋고 모두 좋아하니 가성비가 뛰어난 음식이었다.

모양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어묵 하면 네모였다. 그 네모 모양 하나로 오뎅을 만들고 어묵볶음을 만들며 어묵탕도 끓였다.

하지만 모양이 다르기도 했다. 색종이를 오리듯 취향에 맞게 잘라 집마다, 가게마다 볶음과 탕에 들어가는 어묵의 모양이 달랐다.

엄마는 주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어묵볶음을 만들었는데 어묵탕은 삼각형 모양으로 끓였다. 신기했다. 오뎅만큼은 늘 꾸불꾸불한 네모였지만 말이다.

내가 오뎅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과거 출퇴근길이 멀었던 나는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했는데 그 시간 동안 배가 고팠다.

다행히 퇴근 시간이 되면 버스정류장 옆에 분식집 트럭이 문을 열었다. 버스를 놓칠지 몰라 떡볶이는 먹지 못했지만 한두 개 집어먹는 오뎅이 나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나름 허겁지겁 먹어서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파가 잔뜩 들어간 푹 찍어 먹는 간장 맛과, 흐물흐물한 듯 보이지만 탱탱한 오뎅의 식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 큰 위안이었나 보다.  

대학 시절에도 그런 기억이 있었다. 바로 쌀쌀한 날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먹었던 길거리 오뎅이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만나는 오뎅은 언제나 반가웠다. 날은 춥고 속은 왠지 허전할 때 먹는 오뎅을 대신할 것은 없었다.

따듯하고 시원한 국물은 속을 달래주었고, 오뎅은 배를 든든하게 해 주었다.

길거리 어묵집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서 국물 맛도 다 달랐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곳은 대파와 꽃게를 같이 넣어서 끓여주었는데 국물이 진하고 너무 시원해서 다른 곳은 갈 수가 없었다. 길거리 오뎅에서 부릴 수 있는 사치 아닌 사치였다. 물론 나는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돈이 남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어묵집이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요즘도 그런 곳을 찾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다.

역시 길거리 오뎅에게는 과한 사치였을까. 아니면 그때만큼 오뎅에 진심이 아닌 걸까.

예전에는 매운 오뎅도 유행했었다. 아주 맵지는 않았지만 칼칼함이 있었다. 매운 오뎅과 일반 오뎅을 반반해서 파는 곳이 많이 생겼었는데 이곳에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매운 오뎅도 먹고 일반 오뎅도 먹었다. 국물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칼칼한 짬뽕 국물과 시원한 우동 국물을 고민하지 않고 같이 먹는 기분으로 즐겼다. 즐겨도 괜찮았다.

오뎅의 가격은 우리의 걱정을 덜어주었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가끔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뎅을 몇 개까지 먹어본 적 있다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말하고는 한다.

지금도 그렇다. 남편과 동네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집에 들어갈 때 보이는 길거리 어묵집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추워지는 계절에 맞이하는 반가움이자 사소한 행복이다.

어묵보다 오뎅으로 부르고 싶은 음식. 가게 안보다 길거리가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친숙함. 어묵의 살짝 기름진 듯하지만 담백한 맛. 스며든 간장 맛에 짭조름함.

뜨거워도 시원하다며 마시게 되는 국물. 긴 나무막대의 개수에 왠지 뿌듯해지는 마음. 어묵이 주는 즐거움인가 보다.

그 계절이 왔다. 어묵의 계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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