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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溫

by 최현종

체온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말의 온도'란 단어는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 있을 법도 한데 사전 어디를 뒤져도 그런 말은 없다. 누구나 생각해볼만 한 단어인데 왤까. '언온'이라던지 그다지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데. 때로 표현하고픈 생각이나 마음을 적절히 담을 그릇이 떠오르지 않아 속상해하곤 한다. 얼마 전 공부한 한국어 시험에서도 태어나 처음 본 단어가 속속들이 나오더라. '불잉걸'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가? 아마 모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아무튼 이야기가 샜는데 체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찬 바람이 폐부를 뚫고 들어올 때면 늘상 뜨끈한 국물 음식이 생각난다. 신기한 노릇이다. 여름엔 그토록 불쾌했던 열기가 불과 몇 주 새에 그리운 온기로 바뀌어 온 몸을 덥힌다. 우리가 이 계절에 국물 음식을 떠올리는 이유는 온몸을 메우는 그 온기 덕이다. 여름에 먹는 찬 음식의 냉기는 온몸에 멤돌지 않는다. 입 안과 머릿속을 잠깐 냉각시켜줄 뿐. 허나 이 계절에 먹는 따뜻한 음식이란 건 입 안에 한 줌 넣기만 해도 다시금 피가 돌 듯 온몸을 따스하게 만든다. 우리의 체온과 닮아서 그런걸까.




단순 음식 얘기를 하고팠던 게 아니다. 우리 몸을 따수이 덥혀주는 건 그 밖에도 여럿이 있지 않은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장면이나 멜로디, 꿈이나 동경하던 우상들. 생각만 해도 온몸의 감각을 데우는 것들은 많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것들. 새삼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그걸 감사하게까지 만드는 것들. 그런 것들이 남아 이어지고 퍼지는 삶만이라도 분명 축복 받은 일이다. 그치만 그건 작열하는 불 위에 끓는 게 전부인 물처럼, 분명 뜨겁긴 해도 타오르진 않는 것들이다. 심장은 들끓을지 몰라도 여전히 손 끝은 미지근함에 그친다.




난 늘 극장을 나서며 잡았던 손이나 앉았던 소파에 남았던 온기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심장의 열기가 겨우 손끝에 미치는 게 아니라, 함께 닿아 타오르던 것들. 직접 피부에 닿아 덥혀지던 것들. 역시 사람은 꿈과 희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머릿속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잔뜩 있더라도 불 붙히지 않으면 살아가지지 않는다. 엔진이며 바퀴며 산처럼 쌓여있어도 저 혼자선 구르지 않는다. 제로백이 3초고 마력이 얼마고, 그런 게 연료가 다 동난 시점에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필요한 건 맞닿았을 때의 피부의 온기다.




겨울이라 그런 게 아니다. 따뜻한 음식은 생각나는 계절이 피고 지면 이내 봄이 와 잊혀진다지만, 그때 잡았던 손은 마땅히 그렇지도 않다. 그게 비로소 문제다. 감각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생각과 기억보다 치명적이다. 체온을 그리워한다. 늘상 그리워했다. 맞닿는 찰나의 순간들. 손 끝 마디마디마다 피가 돌고 있다는 감각. 꽉 쥐고 꽉 안을수록 느껴지는 사랑 받는다는 고양감. 그 충만함. 나의 계절은 사는 내내 겨울이다. 떠오른다고 당당히 그리워할 수도 없고, 바란다고 위로 받을 수도 없는 것들을, 떠올리고 바란다. 애쓰고 있다.

불꽃은 늘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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