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댔다. 올 사람은 없었으며, 나는 혼자였다. 계속해서 틀리자, 그 가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도어락은 여전히 제 기능을 다 하는 중이었다. 그 는 마치 문이 고대 벽화라도 되는 양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도어락으로부터 어떤 문양이나 암호라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도어락은 제 본분을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러고 쳐다보길 수분 째, 서서히 멍 때리는 느낌이 들 때 안쪽에서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어 있던 구두주걱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소리였다. 구두주걱을 왜 벽에 걸어 놓지도 않고 그냥 나간 걸까. 내가 몇 번이고 얘기했던 거 같은데. 하긴 그런 얘기를 들을 거였으면 애진작에 문 앞에 저 남자도 저러고 있을 이유는 없었겠지. 문제는 저 사람이 무얼 위해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기엔 좀이 쑤셨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여기 비밀번호 이거 아니에요."
"그래? 틀림 없는데."
"벌써 여러 번 틀려서 사이렌 소리도 울렸어요." "기다려봐. 지금 확인해 볼께."
전화는 짧은 대화로 끊겼다. 그의 목소리는 위층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아래 층의 요가 방송 틈 사이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상당히 가까이서 들려오는데도 듣는 사람마저 힘이 축 쳐지게 만드는 말투였다. 주어진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긴 힘들었다. 대화는 몇 마디 안 되는 전화도 빨리 끊고 싶다는 듯 끝이 툭하니 잘렸다. 누가 보기엔 내기에서 진 양 귀찮음을 무릅쓰고 전화한 걸로도 보이는 대화였다. 나는 저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왜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궁금증에 대답할 마음은 없다는 듯 그는 현관문에 기대어 푹 숙인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밤새 기도를 드리다 지쳐 기댄 모습만 같았다. 그러다 금세 가만히 서있기가 따분했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네, 소장님. 아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고요? 네, 네. 그럼 이 분 생일이나 전화번호 같은 거라도 좀 주실래요?
“이미 기본 신상은 거기 써져 있잖아.”
“그냥 관련된 거 아무거나요. 아 뭐, 가족 생일이라던지 그런 거 있잖아요." "잠시만. 바로 카톡으로 보내 줄게. 지금 손님 와서 끊는다."
“바로 보내줘요. 지금 바로!"
말투엔 묘하게 짜증이 묻어 있었다. 짧은만큼 날카로운 대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안팎은 정적이었다. 현관에는 검은색 구두 한 켤레와 흰색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구두는 멀리서 보면 모르지만 들여다보면 조금은 촌스러웠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구두이니 20 년은 족히 됐을 거다. 그런데도 아껴 신었는지 밑창과 뒷창은 새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도 애지중지 다뤘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놓여진 게, 마치 두 눈을 뜨고 나를 쳐다 보는 것만 같았다. 이제 이 구두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곧 있으면 이마저도 버려지겠지.
‘구두는 신을 일도 없었으면서 구두주걱은 웬 말이래. 그때 신발 가게 갔을 때 떠넘기듯이 샀겠지. 어차피 물려 받은 구두 신을 거면서 괜히 한 번 보러 갔다가 저런 거나 사오고. 저거 살 돈이라도 악착같이 아껴서 밥이나 한 끼 더 먹지.'
나는 현관에 있어야 할 신발 대신 쌓여 있는 편의점 도시락 뚜껑이나 나무 젓가락을 밟아 보고 선 차가워 깜짝 놀랐다. 편의점 뚜껑엔 아직 양념이 묻어 있다. 하도 여러 번 맡아서 이제 냄새는 익숙해졌지만 저렇게 차갑게 식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들어서 치워볼까 하다 고개를 절래 내젓고서는 다시 현관문을 쳐다봤다. 저 사람은 저기 언제까지 있을 생각일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아버지 생일은 ... 아니었고. 그럼 당연히 전화번호일 리도 없겠고. 어머니 기일인가? 이것도 아니네.”
소장이란 사람이 그에게 보내준 내용도 딱히 중요한 정보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제 거의 체념한 듯한 말투로 사장이 보낸 문자의 내용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그러고서 이젠 집념의 노병처럼 도어락에 매달려 하나하나씩 비밀번호를 쳐보기 시작했다.
“건물주 전화번호...1010...이면 나한테 의뢰할 게 아니라 직접 따고 들어갔겠지. 고향 친구라... 0730...아니고. 0323? 이건 뭐지. 강아지 입양일? 이런 걸로 무슨 도어락 비밀번호를...”
그의 목소리 끝엔 이것마저 안돼서 돌아가고 싶다는 구차한 바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도어락은 지금껏 씨름하던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맥없는 효과음을 울리며 열렸다.
“이런 걸로 해 놓으면 아무도 모르기는 하겠네. 하이고, 세상에 현관에 쓰레기가 무슨.” 그는 쓰레기를 보고 짐짓 놀란 척은 했어도 정작 한 군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야. 아 저 강아지 때문에 집에서 안 그러고...참. 너는 뭔 죄니. 하이고 삐쩍 마른 것 좀 봐.”
그는 내게 다가오며 나를 번쩍 들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날 들어올리는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이고 깡말라서 짖지도 못하네. 네 주인도 이랬겠지, 응?”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왜 찾아온 건지 이유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