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글들
1.
온몸이 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이 비유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적절히 와닿을지는 잘 모르겠다. 몸이 물로 가득 차 있다면, 물속에서 뜨진 못 하겠지. 깊으면 깊은 대로 가라앉고 말겠지. 있는 힘껏 주저앉고 말겠지. 안에서 출렁거리는 물살이 거세다. 그 물살에 멀미가 날 것만 같다. 물살이 치는 것뿐인데, 마치 내가 흔들리는 것만 같다. 사위가 진동하는 것만 같다.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2.
수조에 가득 담아둔 물은 푸르다. 물은 투명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호수도 바다도 온통 푸르기만 하다. 덩그러니 받아놓은 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울적해지고 만다. 그 시퍼런 색이 슬프다. 따뜻한 물은 붉거나 주황빛이었으면 좋겠다. 욕조에 담아놓은 따뜻한 온기조차 푸른빛을 띨 때면 불현듯 슬프다. 그게 막연히 슬프다.
3.
어릴 땐 내 죽음이 물에 담겨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차디찬 물 속이어도 좋으니 그 속에 잠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찬 물보단 따뜻하면 좋겠다. 어디에도 안기지 못할 거라면, 물에라도 잠기길 바라야지. 네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야. 과욕이야.
4.
쌓아만 둔다. 차곡차곡도 아니고 그저 투박하고 거칠게 그 자리에 툭. 그런데도 퍽 쌓아진다. 위에서 얼마나 꾹꾹 눌러대길래. 그러던 게 어느새 쌓여 무엇인가가 되었다. 그게 녹은 걸까. 녹아 무겁고 무거운 물결이 된 걸까. 한 번쯤은 울고 싶다. 툭 터놓고 울고 싶다. 그러길 몇 주째. 아무리 찾아다녀도 울음은 나지 않는다. 참아 버릇하던 게 문제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5.
겨울엔 공기가 소리를 삼킨다. 삼켜 우물우물 머금어 가끔 먹먹해지곤 한다. 소복이 쌓인 눈에 대고 내친 소리는 무슨 색으로 물들까. 눈에 대고 흘린 눈물 몇 방울은 무슨 색으로 번질까. 슥슥 헤집어 쓴 글씨는 나리는 눈에 덮인다. 삼켜진다.
6.
넌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이 답답하다고 말했었다. 지붕에 비가 새는 집처럼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얼굴을 찌푸렸다. 빗방울 사이에 갇히는 그 마음을 내가 알 날이 올까. 숲의 청아한 풀내음이 가슴을 움켜쥔다는 너의 말에 난 고요히 널 바라보기만 했다.
7.
바다는 날 모르고, 오직 나만이 바다를 아는데. 그 깊이도, 너비도 초라할 뿐인지라. 바다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헤엄치고 또 헤엄치다가. 발버둥 비스무리한 걸 하다가. 가라앉아 작은 호수가 되고 말아. 나만 알 법한 작디 작은 호수 따위가 되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