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olia> (1999)
운명론에 대한 접근은 늘 신중하다. 운명이란 건 우리네 삶을 정해진 안정으로 결속시키는 안정제가 되기도 하는 한편, 정해진 길로 외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는 구속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린 우리에게 놓인 앞날을 우연으로 믿어야 하나, 필연으로 믿어야 하나. 삶은 다양한 것의 중첩이며 불가피한 취사선택의 연속이다. 확언할 수 없게도 삶은 관점에 따라 우연이기도, 필연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이 궁금하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 그건 당신이 왜 그토록 내게 상처 줄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다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당신이 그어낸 상처는 굴곡을 만든다. 가운데가 볼록 솟아있는 접시에 물이 고일 리 없다. 날카롭게 솟은 가시로 당신을 찌른다. 당신을 찌르다 못내 부족해 나 자신을 찌른다. 가시가 빠진 자리엔 텅 빈 구멍이 남아있다. 이토록 공허한데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고 싶다. 죽도록 미운 당신이고 싶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는 세상이다. 세계의 논리는 평화롭지 않다. 우리는 상처 주며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얼은 어린 프랭크와 그의 아내를 버렸다. 그런 얼을 프랭크는 평생 이해할 수 없다. 지미는 어린 클라우디아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 그런 지미를 클라우디아와 그의 아내 로즈는 평생 이해할 수 없다. 스탠리는 왜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니는 왜 자기는 퀴즈왕인데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왜 그러는지. 그렇기에 우리는 상처받는다. 당신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를 몰라서.
마음속에 구멍이 뚫려 있다. 둥글고 검은 게 마치 우주의 무언가를 닮아 있다. 그 구멍은 모조리 빨아들인다. 사랑도, 우정도, 관계도, 슬픔과 절망도. 모조리 빨아들이고서도 모자라 내 삶의 빛마저도 빨아들인다. 내 결핍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삶은 구멍의 외곽을 따라 처음 본 모양새로 왜곡돼 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클라우디아는 아버지로부터 당한 일을 마주할 수 없어 집을 나가 방탕하게 지낸다. 그녀는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코카인과 매춘에 빠져 살아간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관 짐이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그녀의 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강렬한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노상 자극적인 것들로 삶을 채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서있을 때면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안절부절못해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프랭크는 얼에게 버려진 과거를 마주할 수 없어 자신의 인생을 위조한다. 어머니는 살아있고 아버지는 진작에 죽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어머니는 진작에 죽었고 아버지는 살아 임종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 그와 그의 어머니를 버렸다. 아버지의 자리는 평생 빈 채로 남아있었다. 때문에 그 자리를 메우는 건 오롯이 프랭크 자신의 몫이었다. 어렵사리 메꾼 그 자리엔 왜곡된 성 관념과 과장된 남성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렇지만 '유혹'은 '파멸' 위에 세워진 가건물에 불과하다. 그는 '유혹과 파멸' 속에 위태롭게 서있다.
도니는 다 큰 어른이지만 여전히 어렸을 적에 머물러 있다. 어딜 가도 그는 '퀴즈왕'이다. 치과에 가도, 편의점을 차로 박아도 그는 '퀴즈왕'이다. 하지만 퀴즈쇼 상금은 부모님이 홀랑 가져가 버렸고 그는 술집에서 '다이어트 콜라'나 시킬 정도로 힘들다. 그런 그를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사랑을 고백해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직도 퀴즈쇼에 나오는 답은 모두 맞출 수 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는 모른다. 그런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려준 적 없다. 누구보다 많이 알아도 누구보다도 모르는 게 많다. 정답이 '탄소'인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는다고 해도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 공허가 줄곧 우리를 바라본다. 이곳저곳 왜곡되고 구부러진 채 살아간다. 그 접히고 찢긴 흔적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 잊지 않고 줄곧 할퀴고 긁어낸다.
후회가 담긴 말들을 잔뜩 나부껴도 당사자는 자리에 없다. 애먼 사람에게 고백하는 자신의 잘못. 후회가 가득하노라고, 그렇게 살면 안 됐노라고 고백해도 용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얼이 하는 훈계는 아무런 교훈도 없다. 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건 필의 귀에 닿아야 할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자신이 바람 폈음을 고백하면 뭐하나. 죄를 사하여 달라는 듯 숭고히 잘못을 털어놓아도 끝까지 정작 중요한 건 모른 채 하고 만다. 딸은 도망쳤고, 자신을 혐오하며,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갈기갈기 찢어졌는데도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의 죄만 고백하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론 상처를 씻어낼 수 없다. 당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뒤돈 채 서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중얼거리다 말 것이니까 우린 우리의 손으로 씻어내야 한다.
용서는 가해자의 몫이 아니다. 명백히 피해자의 손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아무리 간절히 죄를 사하여 달라며 무릎 꿇고 빌어도 상처는 피해자의 몫이다. 가해자의 죄책감보다 몇만 배는 무거운 상처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피해자에겐 용서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누굴 용서할 순 있어요. 그 부분이 힘들죠. 뭘 용서할 수 있는거죠?
용서한다는 자체가...가장 힘들죠.
짐의 대사 中
그러니 우선 상처는 저변에 미뤄두자. 굳이 마주 앉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바라만 보다 평생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그렇게 이분되어 있지는 않다지만,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수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짐은 이웃의 소음 신고를 접수받고 찾아온 경찰이었다. 마약을 달고 살던 클라우디아에게 경찰은 적이나 다름없다. 얼과 프랭크를 기어코 이어낸 필은 얼의 간병인이었다.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인의 옆에서 필은 그저 주는 만큼 받으며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노릇이다. 철저히 타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짐은 클라우디아를 가만 두지 않는다. 무능한 경찰인 짐이기에 그녀가 마약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어도 끝까지 그는 그놈이 다시 오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오지랖을 부린다. 짐은 클라우디아의 불안정한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불안에 떠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추근대는 것처럼 보여도 짐은 솔직하게 다가간다. 총을 놓치는 경찰이라니. 무능한 자신을 보며 위축될 법도 하지만 그는 끝까지 진솔하다.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와 데이트를 신청하고,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당신과 함께 있겠노라 말한다. 짐 앞에서 그녀는 비로소 키스하고 싶어서 키스하게 된다. 자신에게 진솔하게 된다.
필은 기어코 얼의 앞에 프랭크를 앉혀 놓는다. 유명인사인 그와 통화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산 성인 잡지에서 얻어낸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 건다. 기어코 그와 이야기를 해내고야 만다. 린다에게 뺨을 맞아도 개의치 않는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들은 얼의 한탄은 자신이 들어야 하는 말이 아님을 알기에. 내가 간병하는 이 남자의 마지막이 결코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고 믿기에 필은 억지를 써서라도 둘을 이어놓는다. 프랭크는 마침내 얼을 마음껏 혐오할 수 있다. 그는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 세상에선 이미 죽고 사라진 지 오랜 존재였는데. 눈앞에 마주하고서야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내 당신을 그리도 끔찍하게 혐오했노라고, 다시 말해 내가 당신을 그리도 간절히 원하고 바랬노라고.
그러니 상처는 어쨌든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린다는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는 동시에 다 죽어가는 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미칠 것만 같고 죽어버리고만 싶지만, 자신에게 진솔하고 자신의 사랑에 진솔했던 그녀는 끝내 그의 곁을 떠나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다.
린다는 얼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얼의 곁을 떠나는 건 사랑하는 그가 아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였다. 클라우디아는 짐과 엄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절연했던 엄마와 다시금 껴안고, 함께하겠다는 짐의 약속을 받아들인다. 프랭크는 자신의 어머니를 정말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 당신을 증오한 만큼 간절히 바랐노라고 고백한다. 스탠리는 아버지에게 더 사랑해 달라고 고백한다. 도니는 바텐더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정체되어 있던 것만 같은 삶에 다시금 시작이 보인다. 상처 속에 갇혀살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상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깐 보이기 시작한다. 상처를 마주 보게 할 힘. 내가 많이 아프고 병들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힘. 나 이곳, 여기 가슴이 많이 비어 매일 밤 울며 지새우는데 한 번만 바라봐 달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결국엔 당신에게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당신.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랑하는 당신과 꼭 쥐어잡은 이 손에.
옥상에서 자살하는 아들을 쏴 죽인 건 아들의 부모였다. 만약 이들이 샷건을 쏘지 않았더라면 공사 중이던 안정망에 걸려 그는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장전되어 있지 않던 샷건에 총알을 넣어둔 건 아들 본인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어디서부터 따지고 봐야 하는가? 자신이 장전해 둔 총에 죽었으니 자살인가? 장전해 두었더라도 총을 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테니 타살인가? 애초에 자살 시도조차 안 했더라면 없었을 일일테니 자살인가? 어디부터가 자살이고 어디부터가 타살인가. 마치 우스꽝스러운 우화 같기도 한 이 이야기를 시작점에 배치해 둔 PTA의 이야기 솜씨는 경탄할 정도로 탁월하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났다. 비가 내린다. 근데 그 비, 하필이면 개구리다. 개구리가 비가 되어 내린다. 이 터무니없는 비는 차도 넘어뜨리고 지붕도 뚫는다. 개구리 비가 내려 클라우디아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고 프랭크는 린다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 도니는 자신의 잘못을 수습했다. 일어나야 할 일인가 싶다가도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일어나야 했던 일들이다. 자칫 돌이킬 수 없을 뻔했던 잘못은 개구리 덕분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개구리 비는 필연처럼 우연히 등장해 모든 일들을 갈무리한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1999), 87
우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일어나야만 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필연에 기대듯 우리가 받은 상처 역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은 우연히 벌어지고야 만다. 필이 하필이면 얼의 간병인이었던 건 그저 우연이다. 짐이 하필이면 클라우디아의 집에 찾아간 것도 그저 우연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마침내 치유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우연을 필연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주어야 할 사랑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 그렇지만 사랑은 필연처럼 맺어지기보단 우연히 다가오곤 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정정당당히 마주 보는 것. 자신의 상처를 똑똑히 목도하는 것. 상처를 치유해 줄 인연을 꽉 잡아 놓지 않는 것.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지 않은가. 사랑받기 충분하다는 건 그런 의미다.
서로에게 숨기는 것 없이 정직하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했소.
그런 것들로 인해 상처를 받잖아요. 그렇게 하겠소.
당신 말대로 하겠소, 클라우디아.
난 포기할 수 없소. 당신을 보낼 수 없소.
이제...내 말 잘 들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오.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오.
당신은 날 떠날 수 없소.
당신이 바보 같다는 말도 더 이상 못 하게 하겠소.
그런 말은 용납하지 않겠소.
당신이 날 원하면 나 역시 당신과 함께 하겠소.
알겠소?
짐이 클라우디아에게
이 영화는 9명의 인물이 TV쇼라는 구심점 하나로 얽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토록 복잡한 인물 관계와 다중 플롯을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해체하다 보면 독특한 점이 하나 보인다. 바로 작품 속 인물들의 위계 구조다.
영화 속 위계 구조를 도식화하면 위와 같다. 다소 기계적인 접근일 수도 있지만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구성이다. 위계 구조 속 수직 관계는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며 수평 관계는 상처를 치유하는 관계이다.
위계의 상층에 해당하는 지미와 얼은 모두 상처를 생산해 내는 인물이다. 반면 지미와 얼의 자녀로서 하층 위계에 있는 클라우디아와 프랭크는 모두 아버지 둘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인물이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TV쇼라는 거대한 항목에서도 스탠리, 도니와 엮인다. 이 둘은 지미와 얼로부터 직접적인 상처를 받은 인물은 아니어도 TV쇼와 엮이며 TV쇼에 대한 하층 위계로서 상처를 입는다.
반면, 상하 구조가 아닌 평등한 위계에 있는 인물은 상처 입은 자들과 엮이며 치유자 역할을 맡는다 경찰관 짐 커링은 클라우디아의, 간호사 필은 얼과 프랭크의 치유자가 된다. 예외적으로 린다만이 작 후반부에 프랭크와 엮이며 다소 독특한 위계를 갖는다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기성세대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