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이 귀여워요
대민서비스가 적성에 맞을 줄이야
임용이 되기 전 수습 공무원으로 일할 의사가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39살 신입에게 정식 임용과 수습은 별 차이가 없었다.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될 자기소개의 순간에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를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수습 공무원은 뭘 하는 것일까?
며칠 후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관할하는 집에서 가까운 주민센터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후에 깨달은 것인데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배려를 해 준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나이 많은 이모뻘 신입생이 혹시라도 적응 못할까 봐 연장자 우대를 해 준 것일까? 20대 어린 동기들이 교통이 다소 불편한 도농복합지역으로 불려 가 있는 것을 보고 추측한 나만의 생각이다.
동장님과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서 앉아 일을 배웠다. 주민센터는 대민서비스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오는 고등학생부터 아흔 살이 넘은 어르신까지 많은 민원인들을 만날 수 있다. 하루하루 똑같은 날이 없는 변화무쌍한 이곳에서 2년 6개월을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의외로 민원대 업무가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성격유형 대문자 I 인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도 충분히 일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업무였다. 물론 해마다 동 축제를 치러야 하고, 두 번의 선거를 경험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다양한 민원인들을 관찰하면서 봉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번호표를 받은 민원인을 호출하고, 전산을 검색해 각종 서류를 발급하는 민원대는 난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반복적인 업무이다. 하지만 서류 발급을 열심히 도와드리면 사탕 하나를 수줍게 내미시는 아주머니도 계셨고, 따뜻한 커피라테를 사 오셔서 정중히 거절한 적도 있었다. 손가락이 닳아 지문 인식이 안 되는 어르신들은 신분확인을 위해 개인적인 질문을 드릴 때가 많은데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에 주시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물론 무례하고 절차에 어긋나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민원인도 있었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엔 다툼도 있지만 마음도 오갈 수 있는 것이어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냐가 중요한 것이리라.
혹시라도 신입 공무원으로서 민원대에 발령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수십 명씩 대기표를 들고 찾아오는 민원인에게 웃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쏟아지는 공문과 공무원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인 어설픈 인수인계로 고통받는 것보다, 하루의 끝이 확실히 마무리되는 대민서비스가 마음 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고 말이다. 상명하복의 공무원 조직에서 내가 좋아하는 업무분장만 받을 수 없는데, 때로는 그 업무가 적성에 맞을 수도 있지만 한계치에 도달할 만큼 힘든 순간도 올 수 있다. 주어진 일이 정책과 기획에 관련된 일이라면 업무의 과중함은 클 것이다. 그것을 즐기면서 해낼 자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희망보직에 신청하는 것이 맞고, 사람에 대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대민서비스도 충분히 공무원으로서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