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가슴 한구석을 뜨겁게 만든 영화가 있었나.
개봉일에 관람한 후 현재까지 총 3차까지 관람한 영화 <1987>. 기자, 평론가를 비롯 네티즌들의 끊이지 않는 호평 세례와 문재인 대통령의 관람으로 지난 1월 8일에는 처음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말하자면 지난해 관람한 영화들 중 가장 내 마음 깊숙이 자리매김한 작품이었다. 소제목에 썼듯 이렇게나 뜨겁고 뭉클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한 영화가 대체 얼마만이었던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나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까.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학생이 고문을 받는 도중 사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그 여파가 상당할 것에 두려움을 느낀 공안당국은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자 힘겨운 싸움을 벌인 이들의 노력에 의해 진실을 결국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영화의 장점 첫 번째, 화려한 배우진이 총출동하는 영화에서 이들 각자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밸런스가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영화는 현재 한국 영화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멀티캐스팅 전략을 그대로 따르는 듯 보이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 기자, 간수, 대학생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보다 차례차례 펼쳐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그 구성의 신선함으로도 제법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등장하는 대공수사처 박 처장이 이른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악이라고 한다면 앞서 언급한 이들이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절대 권력에 맞선 다수들의 이야기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른다.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한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이희준, 박희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부터 설경구, 김의성, 고창석, 조우진 등 그들의 이름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활약하는 배우들까지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 장면에서든 눈부시게 빛난다.
어쩌면 이 영화가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토록 화려한 배우들이 총출동함에도 어떤 한 배역을 뚜렷한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끝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결국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단순한 한두 명의 캐릭터가 아닌, 올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광장에서 울분을 토한 그 시대 모든 시민들이라는 것이 드러나는데 이렇게 특정 누군가를 영웅화하지 않은 연출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자 최대 장점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1980년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세트 디자인이나 소품들부터 마치 불안하기만 한 그때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한듯한 독특한 카메라 워킹,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인 플래시백 등도 영화 전반적으로 굉장히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자칫 그저 무겁고 진중하게만 흘러갈 수 있을 영화가 풋풋한 대학생 연희의 에피소드를 통해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것도 영리한 연출로 느껴진다.
나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30년 전의 사건을 다룬 영화이지만, 당장 지난해 겨울을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외쳤던 나에게 이 영화가 다루는 그때 그 시절은 현재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렇기에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영화의 마지막이 그토록 뜨겁고 뭉클한 울림을 선사했을 것이며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는 순간까지 차마 발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를 넘어, 2000년대 한국 영화가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로 대표되는 것처럼 훗날 201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