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오글거리지만 풋풋한 로맨스.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까지 겹쳐 과연 다 챙겨볼 수 있을지 걱정인 금주 개봉작 중 첫 영화로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를 관람하였다.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일본의 대표 여배우 아야세 하루카와 얼마 전 내한하며 화제를 모은 사카구치 켄타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전형적인 플롯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개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만약 한 십 년 전에 나왔더라면 더욱 인상 깊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는 지병을 앓고 병원에 입원한 한 노인이 간호사에게 읽어주는 시나리오의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960년, 언젠가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조감독 생활을 하는 청년 켄지는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홀로 오래된 흑백 고전 영화를 보는 것을 낙으로 살아간다. 고전 영화 속 미유키 공주에게 반해 이미 수도 없이 본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것이 일상인 켄지의 앞에 비가 세차게 내린 어느 날 영화 속 미유키가 현실 속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너무 따분해 현실 세계로 오게 되었다는 미유키는 영화 속에서처럼 당돌한 성격으로 제멋대로 행동해나가는데, 이 황당무계한 상황 속에서 켄지는 점점 자신이 꿈꿔오던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영화의 초반부는 정말이지 상당히 유치하다. 다짜고짜 시작되는 흑백 영화의 전개는 '괜히 보러 왔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이후 현실 세계로 오게 된 미유키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켄지가 연이어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되는 과정 또한 조금은 식상하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어떠한 이유 때문이든 낯선 세계로 오게 된 인물이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또 다른 인물이 이를 수습한다는 설정은 이미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그 설정의 반복 혹은 답습처럼 느껴지는 탓에 다소 심드렁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영화는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돋보이는 점은 단연 영상미인데, 흑백 영화에서 현실 세께로 넘어온 미유키를 흑백으로 표현해 흑백과 컬러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초반부 연출도 꽤나 인상적으로 느껴지던 영화는, 이후 켄지와 미유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싹 틔워가는 과정 또한 눈을 즐겁게 하는 감각적인 영상미로 그려내 보는 재미를 물씬 안겨준다. 여기에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셰넬의 '기적'을 비롯해 영화 중간중간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음악의 활용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지던 영화는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설정을 더하면서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고, 나름의 반전 요소를 통해 뭉클한 감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냥 참신하지 않은 스토리 탓에 감동의 깊이가 그다지 깊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너무나 이끌림에도 주어진 상황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의 로맨스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을 대표하는 최정상 여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야세 하루카는 설정 그대로 영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미모와 연기력으로 황당할 수 있는 캐릭터에 활력을 더하며, 최근 들어 스크린을 통해 자주 만나게 되는 사카구치 켄타로 또한 개인적으로 관람한 그의 영화들 중에선 가장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가 제법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설정 때문일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고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부터 괜스레 이끌리기도 했던 영화는 '영화란 곧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각자의 매력이 있다' 등의 대사를 통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켄지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영화 속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는 설정 자체부터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관객들을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지, 그렇기에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이야기하는 만큼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인상 깊게 다가올 작품처럼 보인다.
선뜻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소재부터 인물 설정, 스토리의 전개까지 지나치게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유치함을 잠시 내려놓고 관람한다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로맨스 영화처럼 다가올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한 편의 영상 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배우의 다양한 얼굴만큼은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그의 팬이라면 주저 없이 관람하기를 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