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딜레마에 대한, 무척 잔혹하고 강렬한 비극.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극장으로 달려가서 관람한 오늘의 영화 <킬링 디어>. 영화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 <더 랍스터>를 무척 인상 깊게 본 만큼, 그리고 이 영화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 트로피를 거머쥔 만큼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려 온 이 영화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그저 스토리가 진행되는 대로 숨죽인 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는, 강렬하고도 서늘한 문제작이었달까.
영화는 두 자녀와 함께 여유롭게 살아가던 의사 부부 스티븐과 애나 가족의 삶에 의문의 10대 소년 마틴이 들어온 뒤, 그 가족이 겪게 되는 위기와 잔혹한 비극을 그려나간다. 과거 자신이 수술을 집도했던 환자의 아들 마틴에게 일종의 동정과 연민을 느낀 스티븐은 그를 집으로 초대하고 스티븐의 아내 애나와 두 자녀 킴과 밥 또한 마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마틴이 등장한 후 스티븐의 가족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고 그제야 왜 마틴이 스티븐에게 접근했는지 그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
영화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자신의 잘못으로 신의 분노를 사고 결국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다는 내용의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어떤 일이 훗날 그의 가족들을 끔찍한 비극으로 몰고 온다는 설정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떠올리게도 하며, 후반으로 향할수록 점점 더 고조되는 영화의 분위기는 <곡성>이나 <레이디 맥베스>를 관람했을 때처럼 무척 강렬한 여운을 선사한다.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 서서히 앞뒤로 이동하는 카메라 무빙이나 귀를 찌를 정도로 음산한 클래식 음악, 마치 인공적으로 제작된 세트 같은 병원이나 저택의 구조는 영화의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시켜주는 데에 크게 한몫한다.
한편, 영화의 주축이 되는 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무척 훌륭하게 다가온다. 감독의 전작 <더 랍스터>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콜린 파렐은 가족을 비극으로 이끈 가장을 인상적으로 연기해내며, 매 작품마다 그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일종의 압도감을 자아내는 니콜 키드먼의 호연 또한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큰 임팩트를 선사하는 배우는 단연 마틴을 연기한 배리 케오간인데 <71 : 벨파스트의 눈물>, <덩케르크> 등 전작들에서도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섬뜩한 말과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굉장한 열연으로 소화해낸다.
중반부 이후 스티븐은 불가피하게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데,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결국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스티븐을 원망하고 증오하던 가족 구성원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아부를 하고 그가 다른 선택을 하기를 유도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고자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부조리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설정은, 전작에서도 두드려졌던 감독의 독특하고 인상적인 연출과 만나 마치 한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섬뜩함을 자아낸다.
마지막 순간까지 숨죽여 지켜보게 만드는 영화는 상영관을 나선 이후로도 수많은 물음표가 머리 속에 맴돌게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어떤 설정에 '어떻게'라는 요소가 빠져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저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하게만 느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그러한 원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잔혹한 판타지가 굉장히 이끌리게 된다. 아마 몇 번이고 다시 관람하더라도 수많은 상징과 풍자로 어우러진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불쾌할 정도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끄집어내는 독특한 개성은 쉽게 잊히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