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난 뭘 본 걸까 싶은 혼란스러움만 가득.
지난해 6월, 감독에 대한 기대와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크게 흥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영화 <군함도>는, 정말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실망만을 안겨주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조용히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조금 지난 후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를 알리며 개봉한 <인랑> 또한 과연 이게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실망감과 당혹감만을 선사한 채 쓸쓸히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집필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통일 대한민국의 출범을 앞둔 2029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민심이 혼란해진 상황에서 통일을 반대하는 테러조직 '섹터'가 등장하고 정부에서는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새로운 경찰 조직 특기대를 꾸린다. 특기대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보기관 공안대는 특기대를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그토록 복잡한 상황 속에서 특기대의 비밀병기 인랑이 은밀히 활동해 나간다.
영화는 무장 시위가 벌어지는 틈을 타 섹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들을 막기 위해 특기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초반 시퀀스만 봤을 땐 제법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금의 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나름 볼만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키우게 만든달까. 그러나 아쉽게도 결론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이 초반 시퀀스이며 이후의 전개는 도대체 뭐가 뭔지조차 모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영화에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이 존재한다. 특기대와 섹트 사이의 갈등, 특기대와 공안부 간의 갈등, 그리고 특기대 내 인물들 간의 갈등과 두 주인공 임중경과 이윤희를 중심으로 한 갈등까지. 138분의 러닝타임동안 이 다양한 이야기가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중요한 건 영화를 다 본 후 그 무엇도 정리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심이 되는 설정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대체 인랑이 어떤 존재인지, 특기대랑 공안부는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섹트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체 뭘 한 건지 간단한 묘사만 나열될 뿐 그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의된 게 없는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누가 누굴 죽이든지, 누가 누굴 공격하든지 그저 남의 일처럼 아무 감흥 없이 바라보게만 만든다.
통일을 앞둔 미래라는 설정 또한 뜬 구름 잡기에 머물고 만다. 초반 내레이션이 흐를 때만 해도 영화의 핵심 소재처럼 쓰일 것처럼 보였던 이 설정은 특기대, 공안부, 섹트 간의 갈등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그저 부수적인 장치에 그친다. 더불어 지금으로부터 11년이 흐른 2029년을 설정으로 하고 있음에도, 미술이나 세트가 그다지 미래 상황을 그럴듯하게 구현해냈다고 보기 어려워 영화의 배경이 1999년이라고 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주요 인물들이 극적인 상황에서 내뱉는 대사나 몇몇 시퀀스에서의 장면 연출 또한 어딘가 올드함을 물씬 풍기고 있어 당혹스러울 정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혹평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후반으로 갈수록 로맨스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인데, 이미 후기를 보며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두 인물 간의 로맨스는 턱없이 부족한 개연성과 인물들의 황당한 행동 탓에 이상한 사족처럼 느껴질 뿐이다. 특히 영화의 여주인공 이윤희의 경우 그녀가 행하는 행동들의 대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의 연속인 탓에 혹시라도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 따름이다.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등 주요 배우들의 연기도 다른 작품들에서보다 어색하게 느껴져 부족한 개연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마는데, 김무열 배우만큼은 <대립군>, <기억의 밤>에 이어 다시 한번 생동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지만 그 또한 너무나도 평면적인 캐릭터에 상당 부분 가려지고 만다.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반칙왕>, <장화, 홍련>, <놈놈놈>, <밀정> 등에 이르기까지 항상 다양한 장르에 도전을 해온 김지운 감독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SF물에도 도전했다는 그 자체는 나름의 가치와 의의를 갖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당혹감과 실망감만을 선사한 이 영화는 어쩌면 다름 아닌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았기에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