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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뜨거운 울림을 선사하는 첩보 스릴러, 혹은 정치 드라마.

by 뭅스타

여름 성수기를 맞아 개봉한 텐트폴 영화들 중 가장 기대치가 컸던 그 영화 <공작>을 관람하였다. <군도 : 민란의 시대>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 관람한 수많은 한국 영화들 중 4점 이상의 별점을 줄 수 있는 세 번째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한없이 반갑게 느껴질 따름.


영화는 군에서 소령으로 복무하던 박석영이 안기부의 지령을 받고 대북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해외실장 최학성의 지시에 따라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채 북 고위간부 리명운에게 접근하고 정체가 탄로 날 수 있다는 불안과 위험 속에서 점차 그와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며 임무 수행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영화는 이후 박석영이 과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하게 만듦과 더불어 남북 사이의 은밀한 거래가 존재함이 드러나면서 신념과 책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석영의 심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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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목은 물론 <The Spy Gone North>라는 영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영화는 기본적으로 철저히 스파이 영화로써의 성격을 띤다. 대북공작원 박석영이 철저한 연구와 노력을 바탕으로 북한 고위간부에게 접근해 그와 신의를 쌓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정체가 드러날지 모르는 위기를 맞이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감독의 전작들을 비롯해 <올드보이>, <신세계>, <아가씨> 등 수많은 영화들에서 긴장감을 고조시켜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은 이번 영화에서도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며 서늘하면서도 진중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수많은 스파이 영화들과 비교되는 이 영화만의 특성은 총기 액션을 비롯해 단 한순간도 그 어떤 액션 시퀀스가 펼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데, 놀랍게도 최소한의 액션 없이도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로써 굉장한 재미와 몰입감을 자아낸다. 한편 중반부 이후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점점 스파이 영화가 아닌 남북한의 정세를 다룬 정치 영화로써의 성격을 띠기도 하는데, 이때부터 1992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이 영화의 특성이 강하게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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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치러진 상황에서 이 영화가 갖는 메시지는 더더욱 강렬한 힘을 갖는다.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중반부 이후의 전개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조국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두 인물 박석영과 리명운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힘을 합치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때 유행처럼 쏟아졌던 간첩 소재 영화들부터 <의형제>, <베를린>, <공조>, <강철비>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심심찮게 개봉하는 상황에서 이 영화 속 남한과 북한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신의와 우정은 유독 뭉클한 감정을 일게 하며, 특히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감히 올해를 대표하는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여운이 상당하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을 비롯해 김홍파, 기주봉, 남문철 배우에 이르기까지 주조연 배우들의 활약 또한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특히 북 고위간부 리명운 역을 놀라울 정도로 완벽히 소화해낸 이성민 배우의 열연은 그 누구보다도 두드러진다. 연말 시상식에서 이 영화 속 그의 배역이 주연으로 분류될지 조연으로 분류될지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지만 그 어디에서든 트로피를 거머쥐리라고는 감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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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하면서도 씁쓸한 현실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훌륭히 어우러 낸 수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선 박찬욱 감독의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로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단순히 소재만으로 어떤 집단들에게 평점 테러를 당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사족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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