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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무자비하고 잔혹해져 가는 세상을 향한 염세적 시선.

by 뭅스타

지난 2008년 개봉하여 작품상을 비롯 네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관람하였다. 개봉했을 즈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집에서 관람했기 때문인지 당시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만큼, 재개봉 소식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려 온 이 영화는 확실히 이전에 관람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척 서늘하고도 씁쓸함이 감도는 분위기와 주제에, 왜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었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되었달까.


영화는 황량한 분위기가 감도는 1980년대의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다. 총격전이 벌어진 현장에서 돈가방을 주운 르웰린과 그를 쫓는 살인마 안톤, 그리고 보안관으로서 이 사건을 추적하는 에드까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이와 그를 쫓는 이, 그리고 그 현장을 뒤늦게 추격하는 이까지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흥미진진하게 전개를 펼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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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부터 화제 되었던 것처럼 영화는 전개 내내 배경음의 활용을 최대한 배제하였으며 일종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스토리에도 불구 시종일관 담담하고 느릿하게 전개된다. 그럼에도 내내 서늘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데, 이는 코엔 형제의 연출이 갖는 매력이자 힘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통해 그 해 남우조연상을 휩쓴 하비에르 바르뎀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살인마 안톤 쉬거를 소름 끼칠 정도로 훌륭히 소화해내며, 그 외에 조쉬 브롤린, 토미 리 존스, 우디 해럴슨로 대표되는 배우들의 연기는 하나같이 극의 몰입을 더해준다.


장르적 특성을 살린 연출도, 배우들의 열연도 물론 돋보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핵심적인 주제이다. 영화는 결국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가'에 주목하게 만든다. 여기서 노인이란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위해, 혹은 나라를 위해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온 뒤 이제는 자신이 누비던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하는 존재들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살아가기에 젊은 세대들이 펼쳐놓은 세계는 너무나도 녹록지 않다. 보안관 에드가 보고 들은 사람들은 연금을 노린 채 노년의 부부를 살해하기도 하고, 무분별한 살인을 저지르며 이를 즐기기도 한다. 에드는 계속 안톤을 추적함에도 무기력하게 그를 놓치며, 르웰린의 장모는 암으로 괴로워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인들은 그들이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 안톤에 의해 죽음에 이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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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영화의 등장하는 노년층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변해버린 세계에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존재들, 혹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세상에 내몰린 이들처럼 보인다. 갈수록 인정이 사라져 버리는 사회, 돈에 눈이 멀어 무자비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회를 바라보는 노인의 허탈한 시선은 곧 감독의 시선처럼 보이는데, 결론적으로 현시대에 대한 코엔 형제의 비판적이고도 염세적인 세계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부터 두드러지는 이러한 주제는 후반부 에드의 표정과 대사를 통해 극대화되는데, 주요 세 인물 중 가장 비중이 적다고 할 수 있는 토미 리 존스의 인물이 엔딩 크레딧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 또한 결국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마도, 도망자도 아닌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노년의 인물임을 극명히 보여주는 대목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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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과연 10년 전쯤의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작품이자, 앞으로 더욱더 세월이 지난 뒤 다시 관람하면 그때는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른 감상을 안겨줄 것만 같은 확신을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기나긴 여운을 선사한 바 있는 이른바 테일러 쉐리던의 국경 3부작이 있기 전에 이렇게나 놀라운 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만족스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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