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차스테인의 압도적인 존재감만으로도.
북미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미 올해 초 개봉을 마친, 그렇기에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그 영화 <몰리스 게임>을 드디어 관람하였다. 아마 최근 몇 년 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 중 가장 늦게 정식 개봉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 이 영화는, 아론 소킨 특유의 흡입력 있는 시나리오와 제시카 차스테인만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4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흘러간 듯이 느껴진 것만으로도 제법 매력적인 관람으로 기억될 듯 하달까.
이 영화는 2004년부터 약 9년간 불법 고액 사설 도박장 운영한 혐의로 체포된 몰리 블룸의 동명의 자서전을 각색한 작품이다. 로스쿨에 합격할 정도로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동시에 미국 여자 모굴 스키 선수 랭킹 3위에 빛났던 그녀가 어쩌다 포커판에 뛰어들어 영화보다 더욱 영화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 몰리를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려나가는 이 영화는 인생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경험한 몰리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그에게 수많은 트로피를 안겨준 <소셜 네트워크>를 기점으로 <머니볼>과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 영화의 각본을 써내려가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각본가가 된 아론 소킨의 첫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언급한 영화들이 그러했듯 잠시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와 내레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단숨에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드는데, 몰리가 도박장에 뛰어들게 된 과거의 이야기와 FBI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앞두게 된 현재의 이야기의 교차 구성으로 펼쳐지는 플롯 또한 그야말로 다이나믹한 몰리의 삶을 보다 흥미롭게 풀어내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사실상 이 영화를 무조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이 제시카 차스테인이기 때문인데, 역시나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에게 기대한 이상의 존재감을 발산하며 영화를 온전히 제시카 차스테인의 것으로 만든다. 제목에서부터 철저히 몰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드러내는 만큼 몰리를 연기한 배우의 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이 역할을 제시카 차스테인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녀의 활약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바로 지난 해 이와 마찬가지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미스 슬로운>에 출연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인 터라 조금은 캐릭터가 유사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스 슬로운>의 슬로운과는 또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이 영화의 몰리 역시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영화는 이미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만큼 훨씬 안정적인 길로 갈 수 있던 인물이 어둠의 길로 뛰어들며 겪게 되는 각종 사건들을 빠른 편집과 매력적인 스토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떠올리게도 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아론 소킨이 직접 각본에 참여한 <소셜 네트워크>와도 유사점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의 생애를 바탕으로 하는 동시에, 그 인물이 철저히 남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강인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독특한 개성까지 자아낸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몰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두 남자 이드리스 엘바와 케빈 코스트너의 활약은 영화의 안정감을 더해주는 동시에 제시카 차스테인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데에 큰 힘을 부여한다.
정리하자면 어쩌면 지금의 할리우드에서 가장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확고히 드러내는 여배우인 제시카 차스테인의 그 성격을 그대로 빼닮은 몰리 블룸이라는 캐릭터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밖에 없을 만큼,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인상적이고 더욱 매력적인 영화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내내 흡입력 있게 흘러가던 영화가 후반부에 다소 성격을 달리 하면서 급격히 힘을 잃는 것은 다소 아쉬움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