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
일본에서 소규모로 개봉한 뒤 관객들의 엄청난 입소문에 힘입어 1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를 CGV호러파티 기획전으로 관람한 데에 이어 다시 한번 재관람에 나서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신선함을 선사하며 올해의 발견으로 꼽고 싶은 이 영화는, 두번 관람했을 때에도 역시나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영화는 좀비 영화를 찍는 어느 촬영 현장에서 시작된다. 소수의 스탭과 두 명의 배우만으로 꾸려진 현장은 진실된 연기를 추구하는 감독의 고집으로 잠시 촬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이때 좀비 영화를 찍고 있던 그 현장에 실제 좀비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스탭들이 차례 차례 좀비의 습격을 받으며 촬영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된다. 이후 각종 우여곡절이 펼쳐진 지 30여 분이 지나 영화는 갑작스럽게 엔딩크레딧이 흐르기 시작한다.
정확히 37분간 원 씬 원 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점에서 오는 흥미를 제외하면 갑자기 엔딩크레딧이 등장하는 이 초반 시퀀스는 그야말로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없이 어색하고 좀비의 연출은 너무나도 조악해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만큼 '대체 왜 이 영화가 그렇게 호평 일색이었던거지?' 싶은 의문을 강하게 들게 만드는데, 영화는 이후 펼쳐지는 48분 여의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결국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삽입된 이후의 전개가 비로소 본 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위해, 더불어 이 이상의 정보 없이 관람해야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에 차마 자세한 리뷰를 쓸 수는 없을 듯 하다. 다만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얼핏 B급 정서 가득한 좀비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결코 좀비 영화는 아니라는 것.
대체 어째서 이런 결론이 나는 건지 궁금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영화는 결국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생하는 모든 스탭과 배우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처럼 비춰지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초반에 등장하는 길고 긴 원씬 롱테이크의 영화 촬영기는 결국 중후반부에 펼쳐지는 험난한 과정의 결과물인 셈인데, 그 초반 30분 분량을 찍기 위해 고생하는 스탭들과 배우들의 노고가 그려지는 중반부 이후의 전개는 굉장히 유쾌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단편 몇 편을 찍어본, 그리고 아직까지도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완전히 나로선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촬영 현장의 험난한 세계는 더더욱 큰 몰입을 안겨주기도 하며, 이윽고 묘한 감동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그토록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지, 더불어 내가 왜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리고 비록 한없이 힘들지만 영화 현장에 애정을 느끼고 계속 도전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분명 예상치 못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두 번의 '가짜'가 지난 뒤 엔딩크레딧과 함께 삽입되는 '진짜' 촬영 현장이 선사하는 이유 모를 뭉클함은 만약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더라면 '그 누구보다 크게, 그 누구보다 오래 박수를 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아내게 만들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