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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괴>

제아무리 별로라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by 뭅스타

지난해 미리 관람한 <죄 많은 소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기대작이 없는 금주 개봉작 중 첫 영화로 허종호 감독의 <물괴>를 관람하였다. 애초부터 기대치가 없던 데다 시사 후기마저 처참했던 터라 그저 '개봉했으니까 한번 봐 보자'라는 생각으로 관람한 이 영화는, 그렇게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봤음에도 이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충격적으로 형편없었다. 결국 이 영화가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혹평 일색이었던 <상류사회>도 그냥 봐 볼 걸 그랬나 싶을 정도.

영화는 역병을 옮기는 물괴가 나타난다는 괴소문이 떠도는 중종 22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물괴에 관한 소문이 민심을 어지럽히기 위한 계략이라고 여긴 중종은 물괴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옛 내금위장 윤겸을 찾아가 수색 작전을 펼쳐줄 것을 부탁한다. 임금의 명을 따라 백성들과 함께 수색 작업을 이어가던 윤겸 일행은 그곳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거대한 형태의 물괴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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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 대부분은 물괴가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하는, 괴수물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관람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것이 물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영화는 결국 제목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물괴를 부수적인 존재로 활용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 전체 러닝타임이 105분인 영화에서 물괴는 50분 남짓이 흐른 뒤에야 등장하며 이후 그의 활약 역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족들로 채워져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애당초 물괴는 중종이 예상한 대로 민심을 흔들기 위해 영의정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였다. 물괴가 존재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던 도중에 때마침 진짜 물괴를 만난다는 설정부터가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이를 배제하더라도 영화는 도저히 할 말이 없을 만큼 황당하다. 일단 물괴라는 소재를 갖고 와 풀어내고자 한, 민심을 흔드려는 이들과 나라를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대립이라는 설정은 당장 올해 초 개봉한 <흥부>를 비롯해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다룬 것을 그저 진부하게 답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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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장점을 찾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그 무엇보다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은 초반부부터 계속해서 등장하는 개그 코드이다. 영화는 김인권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활용해 계속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데, 정도를 모르고 남발하는 유머 요소는 단 한순간도 웃음을 유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영화 스스로 삼류에 머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와 함께 펼쳐지는 윤겸의 딸 명과 허 선전관의 러브라인은 혀를 내두르고 싶을 정도. 어느 순간 영화는 김명민 배우와 콤비를 이루는 인물이 오달수 배우에서 김인권 배우로 바뀌었을 뿐인 또 다른 <조선 명탐정>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착각까지 하게 만든다.

더불어 <쥬라기 월드> 속 오웬과 블루의 관계를 보는 듯한 어떤 설정은 물론 단 한순간도 전형적인 플롯을 어긋나지 않는 스토리라인, 실소를 유발할 뿐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대체 내가 이 상영관에 왜 앉아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단점들이 영화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일종의 액션 씬에서의 카메라 워킹부터 의도를 알 수 없는 촬영 기법, 인물들이 서로 대화할 때의 촬영 구도까지 영화에서 카메라를 활용해서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가히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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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을 시작으로 <목격자>에 이르기까지 여름 극성수기를 노리고 개봉한 여름 텐트폴 영화 중에서 단 한 편만 건진 상황에서 추석 연휴를 맞아 또 한 번 네 편의 한국 영화가 성수기 특수를 노리고 개봉한다. 그 네 편의 영화들 중 첫 발을 뗀 이 영화의 완성도가 이렇게나 처참한 만큼, 과연 다음 주 개봉할 세 편의 영화들은 어떨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기까지 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너무나도 잘 만든 영화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줄 뿐이었으며, 영화를 보기 전 가장 우려스러웠던 물괴의 CG나 혜리의 연기력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문자 그대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ps.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라는 대사는 감히 올해 최악의 대사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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