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고 풋풋한데 한 끗이 부족한 로맨스.
올 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두 주연 배우가 남녀 주연상 후보로 올랐을 때부터 보고 싶었으나 개봉 소식이 없어 마음을 비우고 있던, 그렇기에 이 한참 늦은 개봉이 특히나 반갑게 느껴졌던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 이 영화는, 최근 몇 년간 관람한 로맨스 영화 중 가장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 작품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5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배우 글로리아가 연극 공연을 앞두고 돌연 쓰러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에 그녀의 연인이었던 신인 배우 피터는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간호를 해준다. 이때의 배경이 1981년이라면, 영화는 이 둘이 옆 집에 사는 세입자 사이로 처음 만난 1978년의 시점과 현재의 시점이 수시로 교차되는 방식을 통해 둘의 사랑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나간다.
실제로 1952년, 영화 <악당과 미녀>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글로리아 그레이엄과 그녀의 연인 피터 터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파스텔톤의 영상미로 그려낸 197,80년대 리버풀과 캘리포니아의 분위기 속에서 꽤나 흥미롭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스무 살 이상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와 피터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펼쳐나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영화를 관람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두 배우의 무척 뛰어난 연기이다. 글로리아를 연기한 아네트 베닝은 이 영화에서 글로리아 그 자체로 분한 듯한 가히 놀라운 연기를 펼치는데, 특히 그녀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후반부 어떤 시퀀스에서의 감정 연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그녀의 파트너 제이미 벨 또한 그의 또 다른 진가를 충분히 발휘해내는 호연을 선보이는데, 이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가 너무나도 인상적이기에 왜 이런 배우가 더욱 좋은 작품에서 더욱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이다. (<판타스틱 4>에는 대체 왜..)
1978년과 1981년이라는 각기 다른 배경이 수시로 교차되면서 절묘한 편집을 통해 각각의 시기가 매끄럽게 연결되는 연출 방식 또한 무척 흥미롭게 다가오는 가운데,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운명 앞에서 멀어지고야 마는 두 인물의 비극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자아낸다. 물론 <필름스타 인 리버풀>이라는 국내 제목도 영화의 전개에 무척 어울리는 것은 분명하지만, 원제인 <Film Star Don't Die In Riverpool>에서 생략된 'Don't Die'가 갖는 느낌이 꽤나 두드러지는 만큼 제목의 변형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배우 지망생과 한때 잘 나갔던 흑백 영화 시절의 스타라는, 상황 자체가 큰 흥미를 자아내는 두 인물의 러브 스토리가 때로는 그저 흐뭇하게, 때로는 한껏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그 둘의 감정선을 조금 더 부각하였다면 후반부가 더욱 강한 여운을 선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둘이 서로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던 확실한 계기나 서로를 향한 마음이 커지게 되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어떤 순간에 대한 묘사가 다소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이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을 영화가 적당한 수준에 머무고 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리하자면, 제삼자의 개입이나 나이, 조건의 차이에서 오는 분열 등 내외부적인 갈등을 크게 겪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애틋하고 담백하게 느껴지는 한편, 그러한 갈등 상황이나 두 인물의 감정선에 대한 뚜렷한 묘사가 적은 탓에 조금은 평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한 편의 로맨스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한편, 어떤 면에서는 소위 '본격 제이미 벨 입덕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한층 더 성숙해진 제이미 벨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자 아네트 베닝이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처럼 다가오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