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새싹을 피우고 자라나는 풀잎처럼.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던 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을 일요일 아침의 상쾌함과 함께 관람하였다. 김민희, 정진영, 서영화, 기주봉, 김새벽, 그리고 안재홍과 이유영까지. 최근의 홍상수 사단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감정에 대한, 관계에 대한, 홍상수 감독만의 가치관을 엿보고 나온 듯한 기분을 선사해주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마치 <북촌방향>이 그러했듯이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핵심적인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인물들 간의(-대부분은 두 남녀 간의) 대화들로 러닝타임을 꽉 채우고 있는데, 크게 연관성이 없는 여러 인물들의 대화가 순차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더 테이블>과 달리 이 영화는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고 지켜보는 관찰자가 존재하는데, 김민희 배우가 연기한 아름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관찰자로서, 인물들의 대화를 관음 하는 관객들을 대변한다.
영화의 전개 방식은 무척 간단하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얽힌 두 남녀 간의 대화가 펼쳐지고 같은 공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가는 아름의 내레이션이 깔리는 방식이 반복해서 펼쳐진다. 인물들 간의 대화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주로 '사랑'이다. 그들 각자의 신념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의해나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결국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기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꿈꾸기도, 사랑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방어하기도, 그리고 더 이상 사랑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한 의지를 내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홍상수 감독이 이야기하는 사랑학개론을 듣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인물들 간의 관계를 논하고, 그 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감정을 논하고, 끝끝내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속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는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더불어 영화는 사랑이라는 정서와 함께 죽음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영화에는 죽음을 맞이한 두 명의 인물이 언급되며, 은퇴한 노년의 배우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는 흑백의 화면 속에서 죽음 이후의 사랑, 사랑 이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일종의 낙관과 희망이 느껴지는 한편, 처연하고 쓸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과 <그후>에 이어 홍상수 감독이 맞이한 새로운 변곡점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한데, 그의 영화 속에서 한층 더 감정에 솔직해진 인물들은 삶을 달관하고 체념한 듯한 감독의 쓸쓸한 정서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준다.
언제든, 누구든,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고야 마는 세상이지만, 그만큼 어쩌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을 그 세상을 다시 한번 살아간다. 각기 그 목적은 전혀 다를지라도 결국 남은 이들은 다시 한번 또 다른 관계를 맺고 또다시 차가운 세상으로의 한걸음을 내딛는다. 관람 전까지 대체 왜 제목이 <풀잎들>일까 궁금해했던 이 영화에서 오프닝 때만 해도 아무 느낌을 자아내지 못했던 풀잎들이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다시 한번 등장했을 때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선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세찬 바람을 이겨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풀잎들이 살아보겠다고 조금씩 자라나듯, 어쩌면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허무하기 짝이 없는 세상일지라도 살아가려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 그것이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한 바이자 내가 여전히 그의 영화를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유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