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처참한 각본 속에서 그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by 뭅스타

연상호 감독은 예전부터 내가 굉장히 애정해 온 감독 중 한 명이다. 두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부터 <지옥-두 개의 삶>, <사랑은 단백질>, <창> 등의 단편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항상 흥미로운 작화와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 돋보이는 스토리로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의 첫 실사 영화 도전이란 점에서 걱정도, 불안도 컸던 <부산행> 역시 그 걱정을 말끔히 씻겨주며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이렇게 그 어느 때보다 초반의 사족이 긴 이유는 그랬던 연상호 감독이기에 이번 영화 <염력>이 더욱 실망스럽고, 심지어 처참하게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경비원 석헌이 애지중지하던 가게가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인 그의 딸 루미와 상가 이웃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사물은 물론 사람들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석헌은 재개발 사업을 위해 강제로 밀어붙이는 건설업체 용역들에 맞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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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영화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찬찬히 되짚어보자면, 일단은 석헌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염력을 쓸 수 있게 된 배경이나 그 염력이란 소재의 활용부터가 다소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운석 같은 무언가가 지구로 떨어지고 석헌이 그 부속물이 함유된 약수를 마심으로써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은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지만, 그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능력의 한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관객들에게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처럼 보이기는 하나 그 어떤 제약도, 장애도 없이 능력을 마음대로 활용하는 석헌의 먼치킨 같은 활약은 곧 영화를 심드렁하게 관람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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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기본적인 영화의 플롯 또한 상당 부분 유치하고 올드하게만 느껴진다. 영화에 가정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질 것이라는 점을 대놓고 예고하는 오프닝부터 다소 불안하게 느껴졌던 영화는 오랜만에 만난 부녀의 에피소드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부녀로서의 특별한 감정 교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탓에 그들의 관계도 특별한 감흥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더불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석헌만을 의지하는 상가 주민들의 모습이나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는 듯한 용역 업체 직원들의 모습 역시 상당 부분 촌스럽기만 하다.


한편 영화는 후반부 상가 주민들과 경찰 및 용역 업체 간의 대립 장면을 통해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함을 꽤나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용산'이라는 직접적인 언급도 없고 그들이 대립을 벌이는 공간적인 배경도 다르지만 얼마 전 <공동정범>을 본 입장에서 크고 작은 요소들은 자연스레 그 참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가장 연상호 감독답다고도 할 수 있을 이러한 사회적 접근은 극 중 악랄한 태산건설 상무로 등장하는 정유미 배우의 대사를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인 비판과 풍자가 염력이라는 소재와 크게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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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때때로 그저 황당하고 유치하게만 느껴지는 염력이라는 설정과 여러 면에서 다소 진중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후반부 메시지 사이에 괴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조금 더 가볍고 대중적으로, 혹은 조금 더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풀어냈더라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영화가 그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영화로 남고 만 느낌이랄까.


제아무리 시사회 때부터 평이 썩 좋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연상호 감독에 대한 부푼 신뢰로 개봉하자마자 관람에 나선 만큼 이 영화가 선사한 실망감은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가 끝나고 결국 기억나는 캐릭터가 그 누구도 없다는 점이 이 영화가 얼마나 매력이 없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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