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고도 씁쓸한 '돈의 맛'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올 더 머니>를 관람하였다. 영화 개봉하기 이전부터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문과 재촬영 과정에서의 개런티 불균등 지급 문제 등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기도 했던 이 작품은, 세계 제일의 부호 J.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존 폴 게티가 유괴되고 유괴범들이 그가 세계적인 부자 J. 폴 게티의 손자라는 점을 노려 무려 17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자 존의 엄마 게일은 한때 시아버지였던 폴 게티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폴 게티는 그 역시 손자 존을 아끼고 있음에도 불구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이때부터 게일은 전직 CIA 요원 플레처와 함께 아들을 구하기 위한 힘겨운 협상을 펼쳐나가게 된다.
<올 더 머니>라는 제목에서, 더 정확히는 <All The Money in the World>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영화의 핵심이 되는 소재는 바로 돈이다. 영화에서 이 '돈'은 게일에게는 아들을 무사히 돌려받기 위해 필요한 최후의 수단이 되고 유괴범들에게는 그들이 인질극을 끝내기 위해 꼭 받아내야 하는 수단이며, J. 폴 게티에겐 그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 돈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특히 J. 폴 게티의 손자가 유괴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세계 각국에선 1700만 달러라는 몸값을 얻기 위해 유괴범을 사칭하는 이들의 편지가 쏟아지는 모습은 인간의 소름 끼치는 탐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부를 이뤘음에도 불구 손자의 유괴 사건에는 내내 담담하고 차분한 태도로 일관하고 골동품을 수집할 때는 심혈을 기울이는 J. 폴 게티의 돈과 사람을 대하는 아이러니한 자세는 결국 돈이란 그것을 어떻게 벌고 모으느냐보다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함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그 배경에 따라 조금씩 색채를 달리 한 초반부 영상 연출을 제외하면 비교적 화려한 연출 기법 없이 무난히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아들이 유괴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어머니인 동시에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겐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차분하고 담담하기 위해 애쓰는 게일을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의 평범한 듯 특별한 연기는 절로 그녀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관객들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데에 크게 한몫한다. 특히 케빈 스페이시의 하차 이후 7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J. 폴 게티라는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음에도 불구 이를 압도적인 중압감으로 표현해낸 크리스토퍼 플러머 배우의 연기는 단연 인상적이다. 화려한 부자임에도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알지 못했던 누군가를 연기해냈단 점에서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에서 그가 연기했던 스크루즈 영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다름 아닌 리들리 스콧임을 감안하면 조금은 심심하고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일 일행과 J. 폴 게티, 그리고 이탈리아의 유괴범들 사이의 대립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그들의 관계가 극후반부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특별한 변화나 진전이 느껴지지 않다 보니 조금은 비슷한 과정의 반복처럼만 다가오기도 하며, 이 때문에 13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조금은 장황하고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을 비리고도 씁쓸한 '돈의 맛'만큼은 충분히 전달되지만 그 전개 과정에서 조금은 더 다이내믹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란 기대치 때문일까 다소 평범하게 느껴진 영화였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영화의 감독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어마어마한 영화들을 연출해 온 리들리 스콧이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