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의 그해 여름>

그저 사랑이 필요했던 한 소녀의 유난히 시렸던 여름.

by 뭅스타

<창궐>로 더럽혀진 기분을 정화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관람한 오늘의 두 번째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영화이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호평이 자자했던 만큼 기대치가 상당했던 이 영화의 소감은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로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한 카를라 시몬 감독의 차기작은 주저 없이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영화는 여섯 살 소녀 프리다가 맞이한 1993년의 여름의 풍경을 잔잔하게 그려나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바르셀로나를 벗어나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그들의 딸 아나와 함께 외딴 시골에서 살게 된 프리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해나가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사랑이 필요할 뿐인 소녀 프리다는 마음에도 없는 사고와 말썽을 일으키며 점점 삐뚤어져 가고, 영화는 프리다의 그러한 행동들을 멀리서 응시하듯 차분히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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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프리다가 외딴 시골에 살게 된 초반의 사건 이후로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의 큼지막한 사건도, 핵심적인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온전히 프리다의 얼굴, 프리다의 행동을 그려나감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 소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헤아릴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를 펼쳐가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올 초 개봉한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한편,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참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하다. 마냥 어리게만 느껴질 수 있는 여섯 살의 나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엄마의 부재라는 크나큰 사건은 프리다의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든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지도, 엄마가 화면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음에도 프리다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는, 그녀의 부재 이후 맞이하게 된 새로운 가정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괜히 심술을 부리고 괜히 미움을 사는 프리다의 행동을 짠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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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복합적인 감정의 변화를 갖는 프리다를 연기한 라이아 아르티가스 배우의 연기이다. 이미 <아무도 모른다>를 필두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이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에서 놀라운 연기를 펼친 아역 배우들을 만나왔지만 이 영화 라이아 아르티가스 배우는 그들과는 또 다른 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너무나도 이른 시기에 소중한 존재를 잃고 사랑에 목마른 주인공 프리다를 연기한 2008년생의 이 배우는 그녀의 표정, 그녀의 눈빛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빠져들게 만들며, 그녀와 아나 역의 파울라 로블레스 배우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그만큼 그들의 연기를 이끌어낸 디렉팅에 감탄하게 된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가 어린 시절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투영한 것임을 밝힌 바 있는 카를라 시몬 감독은 뚜렷한 사건이 없음에도 98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만드는 플롯을 차곡차곡 쌓아내는데, 무척 섬세하면서도 힘 있게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그녀의 연출력은 초반에 말했듯이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결국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또 다른 영화 세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들며, 마찬가지로 한 편의 장편으로 무한한 신뢰를 쌓은 윤가은 감독처럼, 카를라 시몬이라는 감독의 이름을 머리 속 깊숙이 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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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확실히 임팩트를 자아낼 만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데다 전개가 내내 잔잔하게만 흘러가는 만큼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루한 영화로 다가올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이지만, 프리다의 눈빛, 대사,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한다면 상영관에 불이 켜진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묵직한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느껴질 듯하다. 무엇보다 차곡차곡 쌓아온 끝에 강력한 한 방을 터뜨리고야 마는 이 영화의 엔딩은 가히 올해 최고의 엔딩 탑 3 안에 든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이 선사하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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